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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트롱맨에게 투표하기로 했다

입력
2022.01.0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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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얼마간의 세월이 강한 지도자, 스트롱맨(strong man)의 시대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물러난 미국의 트럼프와 일본의 아베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까지, 대국의 상남자들은 극단적인 처방으로 자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웃 국가와의 접경지에 장벽을 세웠으며, 헌법을 고쳐 군사국가로 거듭나려 했다. 무력으로 영토를 강제병합하는 한편 무역분쟁을 일으키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이런 시도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비록 국제정세를 좌우할 대국의 지도자는 아니지만, 필리핀의 두테르테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중에는 마약사범에 대한 즉결처분을 허용하는 강력한 조치가 포함됐다. "시체를 가져와도 현상금을 주겠다"라는 그에게 필리핀 국민은 열광했다.

흔히 스트롱맨에 열광하는 집단은 해당 국가의 저소득 남성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열광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녀노소를 가리지는 않는다. 유의미한 구분이 있다면 국적과 계층일 것이다. 실제로 스트롱맨들의 정치는 대부분 자국중심주의의 형태를 띠었다. 이들은 세계화가 촉발한 인력과 자본, 재화의 이동이 자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라지는 일자리와 밀려드는 값싼 노동력의 틈바구니에서 각 나라의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불안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감정은 시간이 누적되면서 분노로 뒤바뀌었다. 그 분노 앞에 교류와 협력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무기력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에 다섯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 심리의 저변에는 의식주에 관한 생리적 욕구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욕구가 충족되면 안전이나 사회적 소속감, 존경, 자아실현 등 다음 욕구로 확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뒤로 갈수록 더욱 상위 개념의 욕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정치가 강조해 온 욕구들도 바로 그 상위 개념에 속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트롱맨들이 주장했던 건 그 반대다. 그들은 (비록 선진국일지라도) 일자리, 경제, 치안 등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가장 밑바닥에 놓인 욕구의 충족을 강조했다. 자국민 중심주의는 그 방법이었을 뿐, 본질은 당신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삶의 기본 요건조차 충족되지 못한 국민에게 사회적 연대니 무슨 감수성이니 하는 고결한 가치보다 이런 메시지들이 강력하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게 실제로 삶을 개선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 바닥에는, 어차피 그놈이 그놈일 바엔 말이라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냉소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한 해를 시작하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심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2022년 예정된 두 번의 선거만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사건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어떤 인물을 뽑을지 잘 선택하는 게 여느 다짐보다 중요하다. 나는 스트롱맨에 투표하기로 했다. 누구를 특정하는 게 아니다. 자기 혼자 배부른 소리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사람을 뽑겠다는 뜻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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