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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이웃' 의 연 이은 '나 홀로 죽음' ... 충신동의 쓸쓸한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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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이웃' 의 연 이은 '나 홀로 죽음' ... 충신동의 쓸쓸한 연말

입력
2021.12.31 04:30
수정
2021.12.31 11: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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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이자 고독사 위험군 남성 2명
연이어 숨진 채로… 모두 성탄 전날 사망 추정
지자체 관리 받았지만 위험신호 제때 감지 안 돼
전문가들 "현 체계 한계… 이웃공동체 작동해야"

30일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가. 이 동네에서 27일과 28일 잇따라 독신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박준규 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가. 이 동네에서 27일과 28일 잇따라 독신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박준규 기자

30일 찾아간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가.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혼자 사는 노인 가구가 대부분이고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민들 말대로, 동네는 가끔 노인들만 지나다닐 뿐 대체로 적막했다. 충신동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이태호(80)씨는 "워낙 주민 간 왕래가 없어 우리 부부가 당장 집에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이 동네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곡예"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 2명이 이달 27일과 28일 각각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자 고독사 위험군으로 관할 주민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 세상을 떠난 지 사흘 안팎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사망 후 3일 이상 지나 발견되면 고독사라는 서울시 기준대로라면 두 사람의 고독사 여부가 갈리겠지만, 이웃과 당국의 관심 바깥에서 쓸쓸히 숨진 것은 매한가지라 구분은 부질없어 보인다.

100m 거리 두고… 독신자 잇따른 죽음

지난 27일 숨진 채 발견된 A(60)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 박준규 기자

지난 27일 숨진 채 발견된 A(60)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 박준규 기자

먼저 부고가 전해진 이는 A(60)씨였다. 경찰이 27일 정오쯤 'A씨 집에 찾아왔는데 반응이 없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센터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시신을 발견했다. 다가구주택 2층에 있는 A씨의 집 안엔 옷가지와 약봉투, 신문지 등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망 시점은 24일 오후 10시로 추정됐다.

이웃들에 따르면 A씨는 평소 당뇨와 시각장애를 앓고 있었다. 옆 건물에 사는 주민은 "그 집에서 항상 안약통과 약봉지, 레토르트 식품 박스가 수십 개씩 나왔다"고 말했다. 주변이나 가족과의 왕래는 없었다고 한다.

다른 변사자 B(45)씨는 다음 날인 28일 오후 4시쯤 역시 주민센터 측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집에서 발견됐다. A씨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경찰은 B씨가 지병으로 24일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웃들은 B씨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동네 주민 십수 명에게 물어도 B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한 주민은 "과거엔 노인정이나 마을회관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심해진 이후엔 교류가 거의 다 끊겼다"고 말했다.

위험 제때 감지 못한 IT 공공안전망

30일 찾은 서울 종로구 충신동 골목길. 가파른 계단이 많아 낙상 우려가 크다. 박준규 기자

30일 찾은 서울 종로구 충신동 골목길. 가파른 계단이 많아 낙상 우려가 크다. 박준규 기자

한날 숨진 걸로 보이는 두 사람은 고독사 위험이 감지돼 공공 지원 대상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나이 제한 혹은 본인 거절로 온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제공되는 서비스도 위기 신호를 제때 포착하지 못했다.

A씨의 집엔 '스마트 돌봄 플러그'가 설치돼 있었다. 방 안에 꽂아놓은 플러그를 통해 주변 조도와 전력 사용량을 측정해 48시간 동안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을 경우 주민센터의 돌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신고하는 시스템이다.

A씨의 사망 추정 시점을 따져보면 26일쯤 위험 신호가 전송돼야 했지만, 주민센터는 27일에야 알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마저 확인이 늦었다. 주민센터는 A씨와 같은 주택에 사는 주민에게 "쌀 배달이 왔는데도 (A씨가) 나와보지 않아 이상하다"는 신고를 받고서야 앱을 확인하고 A씨 집에 찾아갔다.

구청에선 사물인터넷(IoT) 기반으로 또 다른 위험 감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A씨는 나이 제한(65세 이상)에 걸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기를 집 안에 설치하면 8시간 동안 실내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을 경우 주민센터에 신고하는 서비스였다.

배달 도시락 미수령… 위험 신호 놓쳤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남성 B씨의 주거지. 박준규 기자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남성 B씨의 주거지. 박준규 기자

B씨는 주민센터가 제안하는 위험 신고 서비스를 모두 거절하고, 지난달부터 매일 집으로 도시락을 배달받는 서비스만 받아왔다. 도시락 배달은 대상자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대면 전달을 원칙으로 한다. 그럼에도 주민센터는 B씨가 사망 추정일인 24일부터 도시락을 받으러 나오지 않았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28일 오전 'B씨가 진료 예약을 했는데 오지 않았다'는 병원 신고를 받고서야 변고를 감지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B씨가 이전에도 며칠씩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다가 나중에 나와 도시락을 받아간 게 여러 번이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전달을 강제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두 사람의 죽음을 두고, 취약계층을 위한 최소한의 공공 안전망이 작동되고는 있지만 현행 체제로는 완전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거사(獨居死)가 점차 많아지는 요즘엔 주민센터 직원 몇 명만으론 모든 신고를 인지, 처리하기가 어렵다"며 "이런 신고들을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관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에 맞춰 이웃 공동체를 활성화해 고독사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공적 지원 체계에 더해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웃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망 후 3일이 지난 독거사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단절된 죽음을 찾아서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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