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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장준하 평화관' 건립 제동… "연고도 없는데" vs "독립정신 기려야"

입력
2022.01.02 10: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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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포천시 추진 관련 예산 전액 삭감
장준하, 1975년 포천 계곡서 숨진 채 발견
시, 150억 투입 남북평화 상징 조성 추진
시의회 "역사적 가치 존중하나 명분 약해"

2018년 경기 포천 약사계곡에서 거행된 고 장준하 선생 추모식 모습.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된 지점에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장준하100년위원회 제공

2018년 경기 포천 약사계곡에서 거행된 고 장준하 선생 추모식 모습.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된 지점에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장준하100년위원회 제공

고(故) 장준하 선생 평화관 건립을 두고 경기 포천시가 둘로 나뉘었다. 독립운동가로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포천에서 석연찮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장준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시 차원에서 건립을 추진했지만, 시의회에서 재정과 연고 문제로 예산을 삭감해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일 포천시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달 16일 본회의에서 ‘장준하 평화관 도시계획시설결정 연구용역비’ 2억5,000만 원 전액을 삭감했다. 삭감된 용역비는 평화관 건립을 위한 설계비와 토지매입비, 공사비 등 60억 원을 집행하기 위한 사전 행정절차에 필요한 비용이다.

시의원들은 재정 부담과 장준하 선생의 연고 문제를 삭감 명분으로 내세웠다. 임종훈 시의원은 "국비와 도비가 확보 안 된 상황에서 장준하 선생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전시 행정이 될 수 있다"면서 "고인의 역사적 가치는 존중하지만 포천에는 특별한 연고도 없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장준하 선생은 1975년 포천 이동면 약사봉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기념관까지 세우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얘기다. 시의원들은 재정자립도가 24%에 불과한 포천시가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큰 만큼, 사업부지 인근 시설을 활용하자는 대안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포천시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3년 문을 연 ‘도리돌 문화교류센터’ 등을 선례로 꼽았다.

주민들 "역사적 인물 기념관, 기대 컸는데" 불만 토로

장준하 선생이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 총무실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장준하 선생이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 총무실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장준하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차원에서 평화관 건립을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포천시는 시의회의 예산 삭감에 당혹해하고 있다. 박윤국 포천시장은 취임 직후인 2018년부터 평화관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엔 타당성 검토 용역까지 마쳤다. 이후 장준하 선생이 숨진 채 발견된 약사계곡이 있는 이동면 1만여㎡ 부지에 4,000여㎡ 규모로 1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평화관을 세우기로 확정했다. 토지매입 절차 등이 마무리되면 2024년 완공하기로 장준하 선생 유족과 협의까지 끝냈다.

포천시 관계자는 "접경지역인 포천에 고인의 뜻을 기려 남북평화의 상징적 공간을 만들려 했으나, 관련 예산이 삭감돼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다"며 "향후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재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평화관 건립을 기대했던 주민들도 시의회의 예산 삭감 소식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보영 이동면 체육회장은 "역사적 인물인 장준하 선생을 기념하는 평화관이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민들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도 기대했는데 아쉽다"면서 "고인이 생을 마감한 장소라서 역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평화관을 건립하기엔 충분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8월 27일 의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고,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돼, 권력기관의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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