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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과 성 접대

입력
2021.12.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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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학의 사건'에 연루된 건설업자 윤중천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학의 사건'에 연루된 건설업자 윤중천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딱 봐도 아니다 싶은데 사기를 당하는 사건이 있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물도 있다. 정치인, 법조인과 같은 유력 인사다. 투자 피해자 입장에선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이, 사석이라고 하지만 사기꾼과 함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듯한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면 백지수표를 손에 쥔 기분일 수도 있지 싶다. 유력 인사와 가깝다니 인맥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한 신용장이 어디 있으랴.

있는 돈 털어 넣고, 없는 돈까지 끌어다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왜 사업 성공에 대한 희망은 멀어져만 갈까라고 의심이 들 때쯤에 정신이 든다. 콩깍지가 씌었었다고 고백해봐야 이미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는 막장에 이르렀을 때가 많다. 적지 않은 투자금은 믿고 싶었던 유력 인사에 대한 접대비로 적잖이 쓰인 뒤다. 특히 이런 사건에서 성 접대 의혹은 빠지지 않는다.

멀게는 2013년 불거진 건설업자 윤중천씨 사기 사건, 가까이는 올해 7월 선동오징어(배에서 잡아 급랭한 오징어) 사업을 빌미로 100억 원대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가짜 수산업자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씨 사건 때는 원주 별장 성 접대 의혹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 때는 포항 풀빌라 성 접대 의혹이 제기됐다.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창조경제’ 1호 기업 아이카이스트의 김성진 대표 사기 사건에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의혹의 당사자로 갑작스럽게 지목됐다.

일각에서 이 대표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단초는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9년형이 확정된 김 대표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항소심 판결문 범죄일람표17의 13번 항에 ‘국가기관 고위간부 접대비 및 숙박비 대납’ 명목으로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 김 대표의 요청을 받은 김모씨가 대신 지출한 것으로 기제된 130만 원이 근거다. 판결문에 적힌 ‘국가기관 고위간부’가 이 대표를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대표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이었기 때문이다. 1심 판결문을 보면 좀 더 구체적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현재 1심 판결문은 열람이 제한돼 있어 볼 방법이 없다.

이 대표 관련 의혹을 논외로 하더라도 판결문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은행장에게 황금소나무 100돈 2,200만 원, 공공기관 고위간부∙대기업 고위임원 등에게 순금 50돈 등 1,750만 원, 유엔 고위간부에게 금두꺼비 50돈 1,200만 원, 국가기관 고위간부에게 황금두꺼비 50돈 1,100만 원, 방송사 고위간부∙아나운서 등 접대 술값 250만 원 등 접대 내역이 깨알같이 정리돼 있다. 재판부는 “김 대표가 김씨가 지원한 물품 등의 대부분을 그 경위대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이 건네진 게 사실이라고 법원이 인정한 셈이지만, 어쩐 일인지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이 대표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검사들이 캐비닛을 열기 시작했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쪽에선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건 더불어민주당이라며 여권의 정치공작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여부를 떠나 5년여 전 아이카이스트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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