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75% '법 적용 불가' 등 종결
5인 미만·특수고용 등 보호 사각지대
"법 개정해 대상 늘리고 적극 행정해야"
"X발 죽여 버린다." A씨가 다니는 회사 사장의 말버릇이다. 말끝마다 욕이 붙는다. 갑자기 다가와선 손을 치켜들며 때리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야, 너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내가 너 가만 안 둔다"는 협박도 일상이다. A씨는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B씨는 요즘 자기가 직장인인지, 심부름꾼인지 모를 지경이다. 입사해서 지금까지 한 일들은 사장님이 주문하신 야채, 과일, 달걀 장보기,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민센터까지 가서 주민등록등본 대신 떼오기, 약국에서 약 타오기 따위다. B씨는 "회사 일도 많은데 사장님 집안일에 개인 일까지, 하녀 취급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누가 봐도 직장 내 괴롭힘이다. 이런 부당한 갑질을 막기 위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된 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하지만 A, B씨 모두 이 법에 기대지 못한다. 두 사람의 일터는 근로자가 5명이 채 안 되는, 법 적용 예외 대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A씨는 사장이 욕하는 음성파일과 카톡 대화 내용을 증거로 제출하며 노동청에 괴롭힘 신고를 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란 이유로 취하 통지서를 받았다.
신고의 75% '단순종결'… 검찰 넘겨도 처벌 여부 미지수
2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현황'을 살펴보면 법 시행 후 2년 5개월 동안 고용노동부가 접수한 신고만 1만7,342건(유형별 중복 집계)이다. 유형은 폭언이 6,199건(35.7%)으로 가장 많았고, 부당 인사조치(15.5%), 험담·따돌림(11.5%)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신고 후 결과다. 1만2,997건(중복 제외 기준) 가운데 고용부가 검찰에 송치한 건 160건, 겨우 1.2%다. 이 중 검찰이 실제 기소하고 처벌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0%에 가까울 게 뻔하다. 그나마 괴롭힘 사실이 인정돼 고용부가 회사에 '개선지도' 공문을 내린 것도 23.9%에 그친다. 결국 신고 10건 중 7건꼴은 취하되거나 법적용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종결처리된 셈이다.
"사각지대·소극행정 탓… 법 개정 필요"
이런 허무한 결과는 5인 미만 사업장,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뻗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는 데다, 고용부의 소극행정, 입증책임이 어려운 법의 한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 검찰에 송치되는 경우는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당했을 때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우리 쪽에 들어온 불이익 신고 건수가 올해에만 249건"이라며 "2년 넘는 기간 동안 고용부 집계에서 160건뿐이라는 건 불이익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걸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불이익을 호소하려 해도 현행법상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어 증명해 내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10월 법 개정으로 검찰 송치 외 추가로 처벌조항이 신설되긴 했다. 지체 없는 조사,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징계, 비밀 유지 등을 의무화하고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실행했는지 별도 통계가 없다.
직장갑질119 측은 "과태료 부과는 검찰 송치나 검사 기소 필요 없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제재이기에, 고용부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며 "법 적용 확대와 더불어 입증책임을 사용자도 부담하고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법 개정도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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