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줌마’ 선행의 돋보임

입력
2021.12.29 18:00
26면
0 0

잔고 부족 학생 빵 대신 결제한 편의점 아줌마
수많은 얼굴 없는 천사 선행으로 따뜻한 연말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11일 대구남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제21회 우정선행상 대상' 시상식에서 23년간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를 수리하고 기증해온 신동욱(오른쪽)씨와 이웅열 오운문화재단 이사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코오롱제공

지난달 11일 대구남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제21회 우정선행상 대상' 시상식에서 23년간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를 수리하고 기증해온 신동욱(오른쪽)씨와 이웅열 오운문화재단 이사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코오롱제공

주말 새벽 한 편의점에 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들어와 빵과 초코우유를 계산대에 놓으면서 계좌 이체는 안 되느냐고 묻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나온 중년 아줌마가 안 된다고 하자 학생은 좀 더 싼 빵으로 바꿔 가져온 뒤 카드를 내민다. 그러나 잔고부족이란 메시지가 뜬다. 다시 다른 걸 살피는 학생이 안쓰러워진 ‘편줌마’(편의점 알바 아줌마)가 돈은 나중에 가져다 달라며 자신의 카드로 대신 결제를 해 준다. 그런데 학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방역수칙까지 어겨가며 편의점 안에서 토스트를 먹은 뒤 인사도 없이 그냥 나가 버린다. 그럼에도 편줌마는 “큰돈 쓴 것도 아니고 배고픈 학생 토스트 사 준 거라 호구여도 괜찮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편줌마는 “감사의 표현이 없었다고 마음의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힘들지 않게 좋은 일 했다고 스스로 기분 좋아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 이달 초 전북 부안군청에선 한 젊은이가 ‘김달봉’씨의 심부름을 왔다며 1억2,000만 원을 이웃돕기성금으로 내고 갔다. 얼굴 없는 천사 김달봉씨는 지난 3년간 부안군청과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6억 원도 넘게 기부했다. 그런데 인천과 다른 구호 단체 몇 곳의 기부자 명단에도 김달봉씨가 있다고 한다. 동일인일 수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길 꺼리는 전국의 ‘기부 홍길동’들이 편의상 김달봉이란 공동 가명을 쓰며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 23년간 대구에서 장애인 휠체어를 수리하고 기증해온 신동욱(68)씨 등 코오롱그룹의 ‘우정선행상’ 수상자들도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준다. 54년째 형편이 어려운 부부들을 위해 무료 예식을 지원한 백낙삼(89) 신신예식장 대표 등 LG의인상 사연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2021년에도 우리 주변 보이지 않는 곳에선 작은 선행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분들로 세상은 살 만한 곳이었고, 그러한 온기로 어려움도 이길 수 있었다. 돋보이고 싶어서 허위 경력과 거짓 이력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로 시끄러운 연말, 마땅히 돋보이는 일을 하고도 돋보이는 건 한사코 피해 더 돋보였던 모든 착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