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거주 70대, 서울 신촌지구대로 기부금 전달
상경 고학하던 시절 시장상인 온정에 보답 차원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65.5도를 나타내고 있다. 뉴시스
늦었지만 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부끄럼을 무릅쓰고 편지를 올립니다.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를 제공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A씨 편지 중
코끝이 제법 차가워지던 지난달 중순,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노란 봉투 하나가 전해졌다. 그 안에는 50년 전 고학생이던 자신에게 홍합 한 그릇의 아량을 베풀어준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가 담긴 편지와 함께 2,000달러 수표가 들어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나눔의 손길마저 얼어붙은 상황에 전해진 귀중한 기부였다.
신촌지구대는 28일 미국 뉴욕주에 살고 있는 A(72)씨의 기부 사연을 전하면서 그가 보낸 2,000달러(약 230만 원)를 이날 오전 10시 30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마봄협의체)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공개한 A씨 편지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강원도 농촌에서 상경한 A씨는 신촌에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겨울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리어카에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들과 마주쳤다. A씨는 "너무나도 허기가 져 염치도 없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돈은 내일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면서 "그랬더니 한 분이 선뜻 뜨끈한 홍합 한 그릇을 퍼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라고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군 복무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결국 홍합값은 50년간 치르지 못했다. A씨는 "친절하셨던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면서 "삶을 돌아보고 청산해가면서, 늦었지만 선행에 보답하고 싶었다. 적은 액수라 부끄럽지만,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속죄의 심정으로 부탁드린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경찰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써달라'는 A씨의 뜻에 따라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다만 조용히 기부하고자 했던 A씨를 설득해 그의 선행을 공개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기부로) 연말연시 훈훈한 온정의 햇살이 피어났다"고 말했다.
A씨의 편지 전문.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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