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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입력
2021.12.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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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지리산

국립공원공단이 지리산국립공원을 소개하며 앞세운 운해 풍경. knps.or.kr

국립공원공단이 지리산국립공원을 소개하며 앞세운 운해 풍경. knps.or.kr

1967년 3월 '공원법' 제정으로 한국 국립공원제도가 도입됐고, 그해 12월 29일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굳이 이틀을 걸러, 31일 한려해상과 경주와 계룡산이 추가 지정된 까닭이 일부의 짐작처럼 지리산이 지닌 영적·형이상학적 위상을 존중하려는 의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건 지리산은 가장 최근인 2016년의 태백산 국립공원까지 포함해 총 22개 국립공원의 맏이이고, 규모 면에서도 2곳 해상공원을 제외하면 가장 넓고(471.625㎢), 높이(1915m)도 제주특별자치도 직할인 한라산을 빼면 뭍에서 가장 높다.

한반도의 대다수 산은 평지에서 밀려난 이들의 은신처이자 안식처였고, 더러는 퇴로 없는 전장이었다. 지리산은 한국전쟁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줄여서 남부군)'의 마지막 거점이자 피의 전장이었다. 이병주 대하소설 '지리산'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기를 잃고 소백산을 따라 퇴각하던 부하들에게 "지리산까지만 가면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독려한다. 그곳은 그들의 무덤이었다.

남부군단은 3개 직할사단 외에 전북 북부와 충남지역의 제1전구, 전북 남부 거점의 제2전구로 구성됐고, 각각 예하 사단들이 있었다. 말이 군단이지 총병력은 전남-경남 도당 유격대까지 포함, 지리산에 든 것은 1,700여 명에 불과했다. 비정규군인 그들은 휴전 협상 중에도 이념의 조국인 북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남한에는 양민을 학살하는 공비였다. 국군은 미군 지원하에 휴전 직후부터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전개, 1955년 초 소탕전을 마무리하고 그해 4월 1일 민간인 입산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산 김광섭의 1968년 시 '산'은 시인의 행적을 감안하면 북한산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하지만, 거기 이런 구절이 있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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