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 앞]
근로감독관 동행 취재해 보니
"현장 소장님들은 아직 잘 몰라"
“외부 비계(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에서 벽돌을 쌓고 있는데 안전 난간이 없는 부분이 있네요. 여기서 사고가 제일 많이 발생합니다.”
지난 22일 오후 4시 경기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 공사현장. 30년 경력의 근로감독관인 이정열 고용노동부 성남지청 건설산재지도과장이 원청에서 나온 현장 소장에게 꾸짖듯 말했다. 이 과장은 30여 분 동안 지하 4층부터 지상 6층을 돌며 10여 가지 지적 사항을 메모했다. 그는 "이 현장은 규모가 큰 편이고 공사가 반 이상 진행돼서 비교적 관리가 잘되고 있다"며 "미비점에 대해 2주 안에 조치 결과 보고서를 받고 다시 방문해 점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사현장, 5살 미만 아이도 뛰어놀 안전한 곳 돼야"
이 공사장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으로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된다. 이 과장은 4명의 현장 관리자들에게 "앞으로는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분도 처벌을 받지만 원청의 대표이사도 사법처리를 당할 수 있다"며 "오늘 지적한 내용을 대표에게도 필히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빗대 수차례 설명했다. 그는 "이 법의 취지나 메시지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부모의 입장에서 근로자를 5살 미만 어린이로 가정해 돌보고 교육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를 5살 미만으로 가정하는 이유에 대해선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10년, 20년 같은 일을 해온 베테랑들이 많다"며 "근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안전 교육을 시키는 것과 현장의 위험 요인을 상시적으로 확인해 제거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위험성 평가'를 언급한 것도 문제점 확인과 개선의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 실시돼야 한다는 의미로 봤다. 그는 "한두 번 조심하라 교육하고 감독했다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5살 미만 어린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정도로 공사 현장을 계속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착까지 시간 걸려도... 원청 책임의식 높아질 것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체감할 변화가 많지 않다는 점도 언급했다. 안전 점검을 함께 한 박미사 성남지청 근로감독관은 "원청 본사에서는 이런저런 대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공사 현장을 다녀보면 소장님들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시행일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은 걱정만 하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1호 처벌 사례가 나오거나 큰 기업의 대표이사가 구속을 당하거나 하는 사례가 나온다면 분명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라며 "정착까지 오랜 기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청의 책임 의식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세사업장에 법 적용이 되지 않거나 유예된 것에 대한 대책도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성남지청 관할 구역에서 올해 19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공사비 50억 미만 사업장이었다.
이 과장은 "올가을에 관내 작은 건설 현장의 원청 최고경영자(CEO)를 따로 불러 합동 점검을 한 적이 있는데, 현장에 와서 보니 안전의식이 부족했다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며 "당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경영책임자들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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