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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 대선을 즐기는 방법

입력
2021.12.2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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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바꾸는 스윙 보터, 감독관이자 채점관
정당에 얽매이지 않고 유권자 권리 누려
미국 대선에서도 스윙 주들이 혜택 입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뉴시스

이번 대선이 찍을 후보가 없는 비호감 선거라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즐거운 요소가 적지 않다. 평소 마뜩잖던 후보들이 거의 매일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기세등등하고 남들 조롱에 신이 나 있던 강성 의원들이나 지지자들도 요즘은 주변 눈치를 살살 보지 않는가. 나중에 공수표가 될지 몰라도 50조, 100조 하며 쏟아지는 갖가지 지원책을 살피며 그 가치를 음미해보는 것도 선거 때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특정 후보나 정당, 진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후보 지지율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이 상황을 즐기는 ‘갑’이 될 수 있다. 이런 박빙의 선거에선 그때그때 지지 후보를 바꾸는 스윙 보터(swing voter)의 가치는 팍팍 뛸 수밖에 없다.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표를 애걸하는 후보나 강성 지지자들을 마지막까지 애간장 태우며 온갖 청구서를 들이밀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다. 그들이 벼락치기 공부를 한 수험생이거나 그 학부모 입장이라면 스윙 보터는 실시간으로 그들의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점수를 매기는 감독관이자 채점관이다. 한 진영의 집토끼 또는 텃밭을 자처하는 것은 이런 파워나 특권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정 후보의 팬이 되는 것은 선거 판에서 주인의 권리를 포기하고 감정적 노예의 사슬에 스스로 묶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미국 선거를 한 번 보자.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우위가 확고한 텃밭 주와 선거 때마다 승자가 바뀌는 스윙 주가 확연하게 구분되는데, 스윙 주 결과가 대선 승패에 직결되는 터라 대선 캠페인은 물심양면으로 스윙 주에 집중된다. 후보들의 현장 방문, 갖가지 투자 공약들이 스윙 주 위주다. 이 때문에 “미국 유권자들의 4분의 3이 무시되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 정당이 확고한 전국적 우위를 가진 시대에는 스윙 주의 가치가 떨어지고 텃밭 주들이 혜택을 보지만 양당 세력이 팽팽해지면 텃밭 주 유권자들이 오히려 ‘호구’ 신세가 되는 셈이다. 미국 정치 이론에서도 과거에는 스윙 보터와 유사한 부동층을 학력이 낮고 정치에 무관심한 부류로 폄하했으나 이제는 이해 관계에 밝은 고학력의 합리적 유권자로 조명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형성되는 모습이다. 최근 10년간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의 경제 성장이 가장 높은 것도 이곳이 스윙 보터 지역이라는 점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발전의 큰 계기인 행정도시 공약이 충청권을 잡기 위한 선거 전략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030세대 남성들이 올해 4·7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스윙 보터 경향을 유감없이 드러내자 정치권이 이들 잡기에 전력을 쏟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스윙 보터에게 집토끼들은 “정당과 후보가 대변하는 가치를 버릴 수 없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공정이나 자유민주주의, 평등, 양극화 해소 등의 추상적 담론을 내세워 “이익 투표가 아니라 가치 투표가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말이 먹혔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꿈 깨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네가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이 그런 가치를 실현한다고?”라고 웃으면서. 웬만큼 뻔뻔한 지지자가 아니라면 반박하지 못할 터다.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스스로 삶에서 실천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가 대리하거나 타인을 낚는 미끼로 활용할 게 아니라. 요컨대 스윙 보터들에겐 이번 대선이 즐겁다. 유권자의 권리를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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