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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세시기] 2022년 검은 호랑이 해... 용맹과 해학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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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세시기] 2022년 검은 호랑이 해... 용맹과 해학의 상징

입력
2022.01.0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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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임인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그린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임인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그린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한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국악그룹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 중 한 대목이다. 토끼의 간을 찾아 뭍으로 기어나온 자라가 턱에 힘이 빠져 '토 생원'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호 생원'을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산 아래로 달려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장면을 풀어냈다. 이때 호랑이는 어리석게 희롱당하는 익살스러운 동물이다. 맹수 중 맹수로 여겨지는 호랑이는 용맹과 기개의 표상이면서 때론 이렇게 해학의 상징도 됐다.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동물로 자리매김했다. 신화, 전설, 민담 등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십이지(十二支) 중 호랑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로도 꼽힌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져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였다. 삼재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새긴 삼재부적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져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였다. 삼재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새긴 삼재부적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0만 년 이상 함께한 호랑이... 조선은 '호담국'

동국세시기 등 문헌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면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였다. 호랑이를 통해 나쁜 잡귀를 몰아내고 각종 재난을 막으면서 삼재를 없애기 위해서다. 대길과 가내 안녕, 복 받기를 기원하기 위해 '호랑이부적'을 썼다. 산신, 산신령, 산군 등으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 됐던 호랑이는 민족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마을 뒷산을 지키는 산신에서부터 시공간을 지키는 십이지신(인),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사신(서쪽의 백호)으로까지 아우른다.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적어도 10만 년 이상 살아왔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면서 산맥으로 연결된 한반도는 호랑이의 서식조건과 잘 맞았다. 충북 청원군(현재 청주시) 두루봉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 뼈는 최소 1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고래, 거북, 사슴, 멧돼지 등 사냥물 중 하나로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 5세기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의 수렵도에는 말을 탄 사냥꾼에게 쫓기는 호랑이 모습이 등장한다. 사신도 속 백호도 있다. 흔히 말하는 남주작, 북현무, 동청룡, 그리고 서쪽의 백호다. 사신도는 조선 왕릉의 벽화에서도 발견된다. 앞서 언급했듯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기를 소망하며 대문에 붙인 민간의 세시풍속으로서 호랑이 그림도 적지 않다. 각종 민화와 그림, 장식품, 석상, 속담, 전설, 설화 등에서 호랑이는 숱하게 등장한다. 오죽했으면 조선은 호담국(虎談國)이라 할 정도로 호랑이 이야기가 많았다.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그린 호랑이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동양화가 안창수 화백이 그린 호랑이 그림. 안창수 화백 제공


용맹함과 해학, 두려움의 상징

'호랑'은 한자의 호(虎)와 랑(狼), 즉 범과 이리가 합쳐진 이름이다. 무서운 동물을 뜻하는 일반적 단어였으나 점차 범이라는 특정 동물을 일컫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전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시아 대륙에만 분포했다. 그중 한반도 호랑이는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 서식했던 호랑이와 뿌리가 같다. 하나의 혈통이다. 우리는 백두산 호랑이, 한국호랑이, 한국범이라 불렀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 호랑이로 잘 알려져 있지만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는 더 이상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현재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북한·러시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약 500마리가 생존해 있다.

역사적으로 호랑이와 한민족은 수천 년간 균형잡힌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를 없애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나선 건 조선 건국 이후다. 불교 이념에 입각해 살생을 금한 고려와는 구별된다. 조선 태종 때는 호랑이 사냥을 위한 별도 부대인 '착호갑사'를 처음 중앙에 설치한다. 당시 호환을 제거하는 일은 곧 나라의 안위와 체제 유지와도 직결된 문제였다.

한양도성에 수시로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조선은 호랑이가 많은 나라였다. 선조 때는 창덕궁 안에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고, 영조 때는 궁궐에 호랑이가 출몰한 횟수만 3번이다. 궁궐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전쟁이나 기근 등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민간의 피해도 극심했다. 173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전국에서 140명이 호환을 당했다. 상황이 이렇자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는 수령이 백성을 위해 제거해야 할 세 가지 해악으로 도적과 귀신 무리, 그리고 호랑이를 꼽을 정도였다. 동해안 지역에선 호환으로 죽은 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예방하기 위해 범굿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지속적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결과 한반도에서 호랑이 개체 수는 급격히 줄었다.


20세기 초 우석 황종하가 그린 맹호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세기 초 우석 황종하가 그린 맹호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일제 해수구제 정책으로 절멸... 민족 애환 함께해

결정적으로 호랑이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맹수 사냥(해수구제 정책)에 나섰다. 결국 1924년 경북 경주를 마지막으로 남한에선 호랑이가 자취를 감췄다. 북한에서는 1987년 자강도에서 잡힌 수컷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호랑이다. 당시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은 한반도 내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 보전 정책 없이 야생동물 퇴치와 포획을 주도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백두산 호랑이, 아무르 표범 등 한반도 내 대형 포식동물의 멸종에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한민족의 기를 제거하기 위해 일제가 호랑이를 절멸시켰다는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반도 내 명맥은 끊겼지만 호랑이는 여전히 우리 역사와 민속, 언어, 문화적 상징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한반도 형상을 닭 또는 토끼로 비유했던 일본에 맞서 20세기 초 우리 영토를 호랑이 모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영향인지 우리 국민 4분의 3 이상은 호랑이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호돌이')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수호랑') 마스코트가 호랑이인 것만 봐도 그렇다.


1890년대 충남 부여에서 지내는 은산별신제에서 사용했던 산신도. 오래전부터 산신으로 섬겨온 호랑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890년대 충남 부여에서 지내는 은산별신제에서 사용했던 산신도. 오래전부터 산신으로 섬겨온 호랑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국 곳곳 지명·설화 속 방대한 호랑이 흔적

전국 곳곳의 지명에도 호랑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호랑이가 포함된 지명은 389개다. 새해 첫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의 '호미곶'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지도 전체를 호랑이 모습으로 봤을 때 이 지역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호산리'도 마을 뒷산이 범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개 행정리로 이뤄진 호산리에는 밖범이, 안범이, 밤이고개, 새터범이 등 호랑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명이 있다.

호랑이가 많이 출몰한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도 있다. 부산 동구 수정산 자락을 감싸는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이다. 범일동 안창마을은 '호랑이 마을'로도 불린다. 안창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하천도 '호계천'이다. 경기 가평군 호명산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는 '호랑이굴'도 있다. 호랑이가 드나들며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 설치된 검은 호랑이 조형물. 부산=연합뉴스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 설치된 검은 호랑이 조형물. 부산=연합뉴스


대한민국 상징 대표 동물... 문화적 자산

호랑이는 설화 속에서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애환을 함께해 왔다. 일단 그 양이 많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1,000건 이상의 호랑이 관련 설화를, 조선왕조실록에서는 700건 이상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호랑이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이가 우리 삶과 함께했다는 증거다.

한반도에서 처음 국가가 세워진 사연을 담은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의 배필 자리를 놓고 곰과 경쟁을 벌인 게 호랑이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버틴 곰이 결국 승자가 되지만 우리 민속에선 호랑이가 곰보다 월등하게 많이 등장한다.

이들 이야기 속 묘사된 호랑이 모습과 성격이 다양한 것도 특징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민속상징사전 호랑이편에 따르면 △영웅을 수호하는 신격화된 호랑이 △효와 열을 알아보는 조력자로서의 호랑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신의의 호랑이 △포악하며 배은망덕한 호랑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호랑이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여러모로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간직한 동물이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은 호랑이에 관한 상징과 문화상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오는 3월 1일까지 열리는 '호랑이 나라' 특별전이다. 산신도, 맹호도 등 유물과 영상 70여 점을 볼 수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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