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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건 경제적 '여유' 아니라 '자유'

입력
2021.12.25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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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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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다시, 연말이다. 매년 그랬듯 새해의 자기계발 의지를 부채질하는 광고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그런데 어학 공부와 운동 등이 오랜 세월 주류를 차지해 온 이 광고들 사이 핫하게 등장한 새 주제가 있다. 바로 '경제적 자유'다. '경제적 자유'는 최근 1~2년 사이 전 세대를 통틀어 제일 빠르게 주목받은 키워드다. TV와 유튜브, 베스트셀러며 강연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매체가 '경제적 자유를 찾는 법'을 매일같이 부르짖고 있다. 화자와 수단은 각기 다르나 메시지는 비슷하다. 금융 투자와 부수입으로 소득 안정성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이제 젊은 직장인들은 승진을 목표로 영어공부를 하는 대신 주식 투자와 부업에 매진하고 부동산을 공부한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도 주식과 코인은 항상 화제에 오른다. 혹자는 이 모습을 두고 투기와 불로소득을 지나치게 추앙하는 세태를 한탄한다지만 글쎄, 내 눈에 먼저 읽히는 것은 돈에 대한 탐욕보다는 스트레스다.

투자를 통한 개인의 합법적 재산 증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지금의 재테크 유행이 새삼 눈에 걸리는 이유는 그 해석과 작동 방식에 있다. 투자로 잉여자본을 축적하는 일이 '여유'가 아닌 '자유'로 이해되고, 이 개념이 노동 수입의 비중이 가장 높을 20, 30대의 마음을 특히 강하게 두드리고 있으며,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대다수의 궁극적 목표가 임금 노동자의 지위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흐름. 이는 과거의 사고방식과 확실히 다르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다. 현대인은 대부분 경제적 속박 상태에 처해 있고 임금은 기초적인 생존 유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며 노동은 삶에 '시드 확보' 외의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경제적 '여유'가 아닌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목적은 욕심껏 최대한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고통받지 않는 상태가 되기 위한 최소치의 재산을 모으는 것에 가깝다.

그 이면에는 돈이 모든 일상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사회적 현실이 있다. 가장이 일할 수 없게 되면 일가족이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빈약한 복지 기반과 저축으로 구매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긴 집값, 기업의 권력에 쉽게 유린되는 노동자의 생계까지. 지금의 한국은 노동 소득만으로 일생을 꾸려가는 것이 쉽지 않은 사회다.

이런 환경에서, 비리로 부당한 기회를 얻는 특권층의 모습을 매일같이 목격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혼자의 노력으로 이 아수라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해도 깰 수 없을 듯한 불평등의 벽 앞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일종의 능동적 체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금전 가치의 상대성을 고려했을 때 이 방식으로 '모두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상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이제는 이 세태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사람들을 속박 상태에 두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범한 급여를 받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평균의 개인들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도록 하는 일이다. 더 이상 자유가 특권이 되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삶을 속박으로 느끼지 않도록.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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