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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존재들의 저항 생기 있게 구축하는 솜씨 돋보여"

입력
2022.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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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부문 심사평

노이정(왼쪽) 연극평론가와 문삼화 서울시극단 단장이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노이정(왼쪽) 연극평론가와 문삼화 서울시극단 단장이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응모편수가 75편으로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공연 현장과 대학의 교육 현장이 상당부분 위축되고 있으며 희곡 장르의 창작 역시 여기에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 짐작해 본다. 올해 응모작들 속에서 고립의 문제는 어느 때보다 부각되었다. 1인 가구의 현실, 청년 실업, 고독사, 신뢰가 깨진 사회, 직장 내 경쟁관계, 가족 관계 속의 소외 등이 문제적으로 다뤄졌다. 고립 속에서 실그물처럼 형성되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희곡들도 눈에 띄었다.

당선 후보로 논의된 작품들은 '정기구독', '별똥별, 날아오르다', 'H' 세 편이었다. '정기구독'은 사물인터넷과 구독경제의 일상화 속에서 디지털 데이터로 수렴되어 가는 우리 삶의 양상을 1인 가구, 청년실업 등의 사회 문제와 결합한 작품이다. 희극적 톤을 유지하면서 극을 발전시키는 정교한 변주가 돋보였다. 인간 사이의 대화가 극도로 축소되고 기계와의 소통을 통해 일상을 영위해가는 삶의 양식적 변화를 극적 형식 안으로 들여왔으며 숫자로 치환되어 가는 존재의 위기를 보여준다. 주제의 동시대성 뿐만 아니라 안정된 대화, 유머러스한 상황 구성 능력으로 심사위원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나 지나친 반복과 인용, 극적 행동의 제약 등이 무대 표현의 걸림돌로 지적되었다.

'별똥별, 날아오르다'는 오래된 다가구 주택의 다섯 가구 인물들을 상호 교차시키는 가운데 보육원에서 성장한 청년과 독거노인의 만남을 그렸다. 고시원을 나와 자립의 새로운 단계에 선 청년과 외톨이 노인은 서서히 대화의 물꼬를 튼다. 소박한 무대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군을 구현한 것이 장점으로 꼽혔지만 극적 상황이 분절적이고 제목에서 제시하고자 한 의미가 극 전개 과정을 통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면이 있었다.

'H'는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까지 소외된 두 주인공이 함께 탈출을 꿈꾸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스노우볼 코미디다. 주제면의 새로움보다는 거기에 대항하는 평범한 존재들의 저항을 희극적 문법에 의지해 생기 있게 구축해나간 솜씨가 돋보였다.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전업주부, 계약직과 실업 상태를 오가는 젊은 여성은 가느다란 로프에 의지하여 서로를 잇고 연대를 발전시킨다. 작가는 물건 혹은 사용가치로 대체되는 인간관계를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극작법 안으로 슬그머니 끌어들여 명랑한 희극을 만들었다.

장단점이 분명한 세 작품 중 'H'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작가의 거침없는 언어 능력과 상황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감함이 장막 희곡 창작에도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노이정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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