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전사한 시아버지 유해 67년 만에 찾아
같은 해 5월 어버이날에 대통령 표창 수상
10월 '13회 대한민국 손순자 효부상' 대상 수상
"결혼 45년 만에 시아버지를 뵜어요."
조영선(70)씨에게 올해와 내년은 '결실의 해'다. 한평생 정성을 들인 일들이 거짓말처럼 이뤄진 까닭이다. 우선 6.25한국전쟁 때 강원도 철원 화살고지에서 전사한 시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 시어머니에겐 67년만의 상봉이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시어머니는 요 몇 해 사이에 부쩍 "유해라도 찾아서 함께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은 셈이었다.
얼마 안 있어 집안에 또 한번 경사가 났다. 조씨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67년만의 귀환이라는 테마로 여러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사이 조씨가 45년간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지면서 연거푸 큰 상을 받았다. 가까이 있는 분들과 친인척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씨를 칭찬하니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5월 어버이날을 맞이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0월에는 '13회 대한민국 손순자 효부상'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존경스러웠어요"
"결혼하면 우리 어머니에게 잘해주시오. 신혼 3년 만에 남편을 읽고 고생고생 살아오신 분이라오."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조씨의 남편이 했던 당부의 말이다. 당신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에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모진 세월을 견뎌온 당신을 또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청상과부에 외아들이면 시집살이가 혹독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조씨는 오히려 남편의 그런 효자 같은 면모가 따뜻하게 느껴져 좋았다.
"시어머니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존경스러웠어요. 함께 살면서 배울 점도 많겠다고 생각했지요."
자신도 있었다. 5남매 중 막내인 조씨는 올케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성격이 살갑고 무던해서 집안 어른들에게도 예쁨을 많이 받았다. "어떤 집에 시집을 가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고, 고부갈등에 대한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자신감이 어두운 면을 모두 지우고 남편의 좋은 면만 보게 만들었다.
혼사가 오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시어머니의 인품도 결정적이었다. 결혼 전 시어머니가 조씨의 어머니와 언니를 집에 초대했다. 차를 대접받고 돌아온 어머니는 조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시어머니 될 사람을 만나 보니까 속이 깊고 좋은 사람이더라. 저런 분 만나기 쉽지 않다."
"'49:51' 법칙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았죠"
친정에서 가사 일을 거의 못 배운 조씨는 시어머니께 살림을 배웠다. 실수를 하면 두 번 이상 잔소리나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시집온 후 잔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싫은 소리를 반복해서 하지 않는 성격이셨다. 살면서 시어머니의 연륜과 지혜에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시어머니는 잘 모셔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든든한 보호자였다.
"주변에서는 오랜 세월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수 있던 비결을 물어봐요. 그럴 때마다 49:51의 법칙을 들려줍니다. 좋은 점과 힘든 점이 거의 비슷하다는 거죠. 때로는 좋은 점이 더 많았고, 때로는 힘든 점이 더 많았어요. 다 좋기만을 바라고 살면 신사임당이 시어머니라도 같이 못 살죠."
올해 효부상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 지난 세월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저희 시어머니가 올해 93세신데 제가 이렇게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으라고 오래 살아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어머니는 최근 경증치매 증상이 왔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눈빛과 행동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제가 효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저를 신뢰하고 의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께 늘 감사한 마음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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