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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위대했다

입력
2021.12.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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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타이거 우즈(왼쪽)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 칼턴 골프클럽에서 열린 PNC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 그린에서 아들 찰리와 포옹하고 있다. 올랜도=로이터 연합뉴스

타이거 우즈(왼쪽)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 칼턴 골프클럽에서 열린 PNC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 그린에서 아들 찰리와 포옹하고 있다. 올랜도=로이터 연합뉴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돌아왔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사고 직후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두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의료진은 생명을 잃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한쪽 다리의 절단 가능성을 언급하며 한 다리로 병원을 나설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웬만한 선수라면 다시 골프채를 잡는다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세계를 호령했던 그는 메이저 대회 15승을 포함해 PGA 투어 통산 82승을 올렸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우즈는 그동안 2조 원가량을 벌어들였고 현재 재산만 9,000억원이나 된다. 위풍당당한 황제의 아우라를 기억하는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만신창이 몸을 보여줄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우즈의 복귀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대회를 보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지난 20일 끝난 PGA 챔피언스투어 PNC 챔피언십 프로암에 등장한 우즈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이 대회는 2인 1조로 나서 둘 중 좋은 위치의 공으로 다음 샷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우즈는 아들과 함께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카트로 이동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에선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사고 이전에도 부진으로 인한 재기를 거쳤다. 그때는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함이었다. 샘 스니드와 타이를 이룬 PGA투어 최다승 기록(82승)을 돌파하는 일, 3승 뒤진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경신하는 것 등 잃어버린 황제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열망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우즈는 변했다. 사고와 나이로 인한 육체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저 아들과 같은 필드에서 골프로 교감을 나누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전부인 듯했다.

찰리의 스윙은 어릴 적 우즈를 뛰어넘었다. 실제로 아버지보다 더 멋진 어프로치샷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경기에 몰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 우즈가 든든하게 서 있었다.

우즈가 무리해가면서 이 대회에 출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치명적 교통사고 뒤 다시 필드로 돌아가기 위한 피나는 노력 역시 아들로 하여금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게 함이 아니었을까.

우즈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재활 기간 동안 우즈는 2006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얼 우즈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장교(중령)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얼 우즈는 생전에 우즈에게 정신적 강인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즈는 "아무리 긴 고통이라도 하나씩 잘라서 견디라는 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면서 "(사고 후) 9개월 동안은 지옥이었지만 두세 시간은 견딜 수 있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다시 스윙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즈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가 내년 1월 개봉된다. 패배를 모르던 골프 황제였던 동시에 엄청난 스캔들에 빠지며 몰락했던 남자. 재기에 성공했지만 교통사고로 위기에 놓인 우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그가 다시 일어선 건 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였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성환희 문화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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