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걸프 위기 당시 중동 특사로 임명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협상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당시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대해 “겁이 많은 성격”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당시 후세인 대통령과의 협상으로 일본인 인질 전원 석방을 이끌어 냈다.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다음해 1월 미군이 주도한 다국적군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시작, 2월 말 승리하면서 끝났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 후 미국 등 각국의 외국인을 인질로 잡았고, 다국적군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은 별도로 이라크와 인질 협상을 벌였다.
NHK 방송이 22일 기밀문서에서 해제된 1989~1991년 작성된 일본 외무성 자료 등을 근거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그해 11월 일본인 인질 석방 협상을 위해 이라크를 방문한 나카소네는 후세인과의 회담에서 “일본은 평화국가로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헌법 개정도 하지 않고 있으며 자위대를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또 “부시 대통령은 원래 겁이 많은 성격으로, 혼자서는 무력 사용을 결단할 수 없다”면서 “내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나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와 회담해 전쟁 회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NHK는 나카소네 전 총리가 “일본은 중립적 입장이라고 강조하고 평화협상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인질 석방을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이라크에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후세인에게 “미국인이란 일단 발끈하면 앞뒤 분간을 못한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인을 좋아하고 그들의 솔직한 면은 좋지만, 때로는 10대 같은 면이 있는 게 곤란한 점이다”라고 말했다.
후세인은 나카소네와의 협상 후 만족한 듯 빠른 시일 안에 일본인 인질을 석방했고, 이듬해 1월 초에는 나카소네에게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하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이 계획을 일본 정부에 통지해 준 시점은 개전 사흘 전인 1991년 1월 14일로 밝혀졌다. 제임스 베이커 당시 국무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나카야마 다로 외무장관에게 “미국인이 피를 흘리게 된다”며 걸프전쟁 개시 계획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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