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행 이후 '새로운 유형' 교권침해 증가
학생들 조롱글에 교권보호위 개최 요구했지만
학교 "강사는 교원 아냐" 거부… 교육부도 "적법"
'혐) 이 년 찢고 싶으면 개추ㅋㅋ'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B군은 이달 4일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내 학교 게시판에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시간강사 A씨가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캡처한 사진이 포함된 게시물이었다. 동료 학생 C군은 같은 게시판에 A씨 실명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 제자들의 비행에 충격을 받은 A씨는 학교와 교육부에 교권침해 피해를 호소했지만, 이들 기관은 강사는 '교원'이 아니라서 보호 및 지원 조치를 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원격수업 확대로 교사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하며 모욕하는 행위가 빈발하면서 대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간강사는 현행 규정상 교권침해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칫 교육 현장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용인하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국 초중고교 시간강사는 올해 4월 기준 5,313명에 이른다.
학생 요구 거절했다가 수모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겪은 수모는 B군의 생활기록부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비롯했다. A씨는 올해 1학기에 학생들에게 '진로탐색 보고서'를 제출받아 관련 내용을 생기부에 기재했는데, B군이 지난달 대면 수업에서 "장래희망이 교사로 바뀌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A씨는 생기부 작성이 이미 완료됐다며 거절했다. 요청을 들어주면 다른 학생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B군이 수업 도중인데도 "왜 안 되느냐"고 큰소리로 항의하자, 수업 후 B군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재차 이유를 설명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B군은 온라인상에 A씨를 겨냥한 글을 게시했고 다른 재학생들도 가세했다. C군은 '애들아 ○○○ 샘인데'라는 제목으로 A씨를 사칭한 글을 올려 A씨 실명을 공개했다. 본문에는 '너네 꼭 찾아내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내용을 지어 썼다. D군은 특정 언론사 웹페이지와 B군 게시글을 합성해 이번 사안이 기사화된 양 꾸몄다. 해당 게시판에 문제성 글이 잇따르자 "수정이나 삭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고하는 글이 올라왔지만, "이 정도 수위로는 처벌 절대로 안 받는다. 욕설에 비방도 아니고 사실도 거짓말도 없지 않노"라는 반박글이 뒤따랐다.
"교원 아니다" 교권 보호 못 받는 강사
이런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개최를 요청했다. 교보위는 교사, 학부모,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학교 심의기구로, 교권을 침해한 학생의 징계와 피해 교사에 대한 심리상담·법률 지원을 결정한다. 교원의 신분보장과 교육활동 보호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원지위법에 근거를 둔 제도다. A씨는 "교사는 교과 내용뿐 아니라 인성도 지도해야 한다. 학생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면 자신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지도해 달라"는 입장문을 학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학교는 '시간강사는 현행법상 교원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교보위 개최 요구를 거절했다. 다만 교사들이 참여하는 학생선도위원회를 열어 B군, C군, D군, 게시판 운영자 등 학생 4명에게 10일 이하 등교정지 처분을 내렸다. 생활기록부엔 남지 않는 수준의 징계다.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시간강사의 교권을 인정해 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지만, 교육부로부터 '교보위를 열지 않은 학교 결정에 법적 문제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A씨는 초중등교육법상 (교원이 아닌) 시간강사로 분류되고, 시간강사는 교원지위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이달 14일 해당 학생 4명을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번 일로 학교에 병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A씨는 본보 인터뷰에서 "다시 수업을 시작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맞게 되면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안타깝지만 우리 아이(학생)들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을 텐데, 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권리를 확실히 보장받길 원한다"며 문제를 공론화한 이유를 밝혔다.
교육계 "교권 보호망 확대해야"
교육 현장에선 원격수업이 확산하면서 이전과 다른 유형의 교권 침해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A씨의 사례처럼, 온라인 화면에서 교사 얼굴 사진을 캡처해 모욕적 글과 함께 게시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교권침해 현황 집계에 '새로운 유형'을 신설했는데, 지난해 91건이던 그 발생 건수가 올해는 1학기에만 131건으로 늘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새로운 유형의 교권침해는 대부분 원격교육으로 인한 것"이라며 "학교 교보위 개최 건수를 기준으로 집계하고 있는 만큼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교권침해 사례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시간강사, 산학겸임교사 등 법정 교원으로 분류되지 않는 교육자에게도 보호망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시간강사도 정규 교원과 차이 없이 교과 지원 활동을 하는데, 교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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