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청소년 부문 '엄마 도감' 권정민 작가

권정민 작가는 "온갖 고귀하고 아름다운 말로 모성을 포장하면서도 정작 엄마에 대한 노동과 건강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에 말문이 막혔다"며 "말을 처음 배우는 아기처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써나갔다"고 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권정민(41) 작가의 그림책은 어딘가 이상하고 불편하다. 포획의 대상에 불과한 탈주한 멧돼지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는 처세를 설파하고('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뿌리가 잘린 채 북반구로 팔려온 열대식물이 도리어 말을 건네온다('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개가 목줄을 맨 인간을 산책시키는 장면('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에 이르면 당혹을 넘어 경악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자리에는 인간이 없고, 멧돼지, 열대우림에서 온 알로카시아, 개가 있다. 인간과 동식물의 관계가 전복되는 그 순간, 권 작가의 이야기 세계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아이와 엄마의 자리가 바뀌었다. '엄마 도감'은 아기의 시점에서 엄마를 연구하고 기록한 책이다.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엄마로 태어난' 권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늘 존재하므로 더 궁금할 게 없는 존재가 엄마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어쩐지 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는 권 작가의 얘기다. 그는 "아기에 관한 보고서는 날짜별로 쌓여 있는데 아기와 함께 생겨난 엄마라는 종족에 대해선 아무도 연구해놓지 않았더라"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새 생명체 엄마에 대해 도감 형식을 빌려 조명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 도감'은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순서로는 권 작가의 최신작이지만 이 책이 기획된 건 4년 전이다. 그는 "엄마라는 사사로운 글감을 책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펼쳐놓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저의 가장 취약한 시절을 다시 들춰 보는 게 불편해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고 돌이켰다. 엄마임을 드러내는 순간 작가로서 정체성이 제한될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 그럼에도 "'충분히 말해야 한다'는 쪽이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를 이겨서" 책이 나오게 됐다.

엄마 도감·권정민 지음·웅진주니어 발행·48쪽·1만3,000원
대학에서 응용동물과학을 전공한 권 작가는 방송작가로 10여 년 일하다 "혼자서 내 작품을 만드는 일"을 찾아 그림책 작가가 됐다. 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정말 그래? 과연 그럴까?' 묻는 작업이 재미있다"며 "매일 보던 풍경이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걸 계속 확장시키다 끝까지 가면 책이 됐다"고 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 그림책이라지만 '엄마 도감'은 유독 엄마를 위한 책으로 다가온다. "어디선가 불안해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다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고,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곁에서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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