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조금새끼’와 200만 원 꾸러미

입력
2021.12.22 18:00
30면
0 0

취업난에 집도 없어 혼자 살기 벅찬데
출산장려금 준다고 아이 낳을 수 있나
다음 대통령에 특별한 거 바라지 않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가난한 어부들이 모여 살던 목포 온금동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난한 어부들이 모여 살던 목포 온금동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1987’의 ‘연희네슈퍼’ 촬영지로, 가난한 어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목포시 온금동과 서산동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다. 조금은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때다.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도 출어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 이때 집집마다 생긴 아이들이 열 달 후 한꺼번에 태어나면 조금새끼라고 불렀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에서 함께 뛰어놀던 '조금둥이'들은 어른이 되면 배도 같이 탔다. 그러다 바다가 이들을 삼키면 제삿날까지 같았다.

조금새끼 이야기는 아기 울음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우리 사회가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사실 어부와 아내가 아이를 가진 건 열심히 고기잡이를 하면 자식을 굶기는 일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달동네 오막살이 단칸방이라도 그들에겐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일과 집이 없었다면 조금새끼들도 나올 수 없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을 보면 이게 모두 막혀 있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5%도 넘는다. 대학을 나와도 맘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대기업 공채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 안 좋다. 10년 가까이 취준생인 이들도 적잖다. 직장도 없는 상황에서 연애와 결혼은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들에겐 나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이다.

바늘 구멍을 뚫고 취직에 성공해도 집을 마련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12억 원도 돌파했다. 20대가 저축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100년도 더 걸린다. 빌라나 다가구주택에서 전세나 월세로 신혼집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만만찮은 가격대다. 반지하도 1억 원 밑으론 찾기 힘들다.

정부가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저출산 극복 5대 패키지’를 본격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1월 출생아부터 첫만남이용권 200만 원을 지급하고, 영아수당도 신설해 월 30만 원씩 주기로 했다. 일부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이미 출산장려금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에선 먹튀가 적잖고 오히려 인구도 줄어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자리와 집값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인데 아이 낳으면 양육 수당 더 주겠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니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80조 원이 넘는 관련 예산을 쓰고도 사실상 출산율 제고에 실패한 이유다. 현상이 아닌 병의 원인을 치료하고, 물고기를 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낫다.

국가가 출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구가 국력의 척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구는 늘어야만 하고 그래야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다. 최근 중국에서 공산당원들에게 세 자녀 낳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도 이런 사고에서 기인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몇 명을 가질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지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의 산아 제한과 지금의 출산 장려 정책은 국가가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강요하고 침해하려 한다는 점에선 궤를 같이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했던 정부가 이젠 200만 원 줄 테니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하는 건 똑같은 간섭이고 오만이다.

통계청은 올해 인구가 5,174만 명으로 전년보다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공간은 좁아져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본능과 섭리의 결과다.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으로 완벽한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도, 특별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성실히 일하면 새끼들을 낳고 내 집도 마련할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세상을 꿈꿀 뿐이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박일근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