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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업체만 신났다?... 중대재해 줄이는 노력보다 '면피용 꼼수'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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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업체만 신났다?... 중대재해 줄이는 노력보다 '면피용 꼼수'만 고민

입력
2021.12.27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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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달 앞]
현장엔 CCTV, 근로자에겐 바디캠 설치
로펌, 법률자문 늘자 고용부 출신 스카웃
안전 강화보다 법적 책임만 피하려

지난 16일 부산의 한 도로 확장공사현장에서 경계석 운반 작업을 하던 굴착기가 쓰러져 운전기사가 1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 제공

지난 16일 부산의 한 도로 확장공사현장에서 경계석 운반 작업을 하던 굴착기가 쓰러져 운전기사가 1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 제공

지난달 한 대형건설사는 하청업체들에게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관리자들에게 '바디캠'(몸에 부착하는 이동형 폐쇄회로(CC)TV)을 착용시킬 것"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바디캠도 CCTV의 일종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즉각 철수시켜라"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회사측에 보냈다.

일부 현장에선 관리자들이 실제로 바디캠을 달고 감독을 하고 있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보다는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떠넘길 궁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 제정 취지와 정반대로... 면피성 조치만"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26일, 노동계에서는 "현장은 되레 산으로 가는 분위기"라는 자조와 한탄이 쏟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게 한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만큼 현장 안전에 각별하게 신경을 쓰라는 얘기다.

그런데 현실은 사고가 우려되는 현장에 대한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피하게 하려는 '꼼수'가 난무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중소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대책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손 놓고 있는 곳도 있어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 현장 가운데 긴장감이 가장 높은 곳은 건설업계다. 산업재해 발생 1위 업종으로, 지난 10년 간 꾸준히 해마다 400~500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매일 1~2건의 사망사고가 터지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례’가 건설업에서 나올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정부도 '맞춤형 자율점검표'를 만들어 건설현장에 배포하는 등 건설업을 집중 감독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이런 노력이 무색할 정도다. 박세중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한마디로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며 "법 제정 취지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가장 큰 불만은 처벌 대상이 된 원청 업체들이 면피성 조치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CCTV·바디캠 설치

대표적인 사례는 관리자 몸에 바디캠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다. CCTV 설치는 공사 현장의 특성상 여의치 않고 법적으로 노동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반면 바디캠은 CCTV와 달리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명확한 법적 판단이 내려진 적이 없다. 박 국장은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현장 노동자를 압박하고 사고가 났을 때 법적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디캠을 포함한 CCTV 설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수도권 한 산업단지의 화학공장에서 사측이 공장 내부 곳곳에 CCTV 수십 대를 설치하려다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 8월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물류업체 노동자가 리프트 설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사측은 CCTV 설치를 대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CCTV 설치가 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한 근로감독관은 "CCTV를 통해 근로자 과실이 아닌 시설물 하자에 원인이 있다고 규명되는 경우도 있다"며 "직원들과 협의를 통해 반드시 필요한 곳을 지정한다면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속노조 관계자는 "경영책임자가 책임감을 갖고 안전 관리를 하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와 CCTV 설치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안전 조치를 강화하는 것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타워크레인 사고가 나니까 안전고리를 반드시 걸라는 포스터가 대대적으로 붙었는데 정작 안전고리를 걸 수 있는 장치는 설치되지 않아 사고가 재발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안전관리 모르쇠 큰 기업들, 로펌 문만 두들긴다

현장 관리자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호남권 중소건설사에서 10년째 현장 소장을 하고 있는 A씨는 "솔직히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실제로 옷을 벗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현장 소장의 경우 현재는 사망사고가 나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구속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A씨는 "사실 사업자나 대표이사는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가고 좋은 변호사라도 쓰지만, 우리는 변호사도 자비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공사 현장에서 만난 현장 관리자 B씨도 "본사에서 안전 관리를 강화하라고 압박이 심해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관리자를 늘려주겠다거나 공사가 지연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조치는 없다"며 "결국 사고가 나면 우리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기업들 역시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사고 발생 시 처벌 여부를 판단할 '의무'의 기준이 모호한 탓에 CEO들은 로펌과 자문 계약을 맺고 책임 회피 장치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무조건 1호가 되면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와서 로펌 자문에 따라 안전 관리 조직 강화, 조직 개편 등을 추진했다"며 "법무 비용만 늘어나고 현장이 얼마나 안전해졌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로펌을 찾는 사례가 늘면서 고용부 출신 공무원들이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되는 사례도 늘어 때아닌 '전관예우'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무풍지대'

중소 사업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승복 전국레미콘조직사업단장은 "실제 공사 현장은 영세한 곳이 훨씬 많고 사고도 더 많이 나는데, 그런 곳들은 아예 법이 시행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노동자 작업거부권이 확산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인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업거부권은 현장 근로자가 작업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위험작업 중지권'을 좀 더 확대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삼성물산의 경우 올해 3월부터 6개월 간 84개 건설 현장에서 2,175건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있었고, 근로자 중심의 안전 문화에 큰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서울시설공단이 도입 의사를 밝히는 등 공공기관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노조의 힘이 센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제외하면 자발적인 제도 도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차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대신 '정부의 지원'을 명시한 중대재해처벌법 16조는 올해 1월부터 바로 시행이 됐다"며 "11개월이 지나도록 고용부가 중소기업 산재예방을 위해 무슨 지원을 했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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