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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심사평]의학 전문 번역가의 노고 돋보인 역작

입력
2021.12.24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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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부문 수상작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 발행·864쪽·4만 원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 발행·864쪽·4만 원

번역 부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책은 역사 분야의 '대변혁'과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과학 분야의 '물은 H₂O인가'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환경 분야의 '시간과 물에 대하여'와 '고래가 가는 곳', 예술 분야의 '시간의 각인', 사회 분야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철학 분야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의학 분야의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였다.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어떤 책이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각각 뚜렷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수상작은 한 권이어야 했다.

출간 의의와 번역의 질을 기준으로 삼아 토론한 끝에 책은 3권으로 압축되었다. 최종 후보작은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시간과 물에 대하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였다. 재난사의 관점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심층적으로 파헤친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컸고, 교차 감수를 통한 번역의 가독성도 높았다. 현 시대의 화두인 기후 위기를 시적 문체로 묘파한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책의 특성을 고려한 미학적 번역이 돋보였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증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과 담론을 통시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두 사람의 저널리스트가 쓴 저작이지만 의학적 견지에서 다뤄진 자폐증 논의가 적지 않다. 색인을 포함한 전체 분량이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소아과 전문의이자 출판인인 역자가 직접 번역하고 출판했다. 믿을 만한 의학 서적 번역을 꾸준히 해 온 역자의 노고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그가 애쓰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훨씬 더 늦게, 혹은 더 나쁘게 우리에게 도착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심사위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다른 후보작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두가 이견 없이 이 책에 동의하였으므로, 2021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작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로 결정되었다.

허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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