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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의 1조 원짜리 초대장에 화답한 멸종위기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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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의 1조 원짜리 초대장에 화답한 멸종위기종들

입력
2021.12.22 04: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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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공업지구 지정 후 급격한 산업화로 수질 악화
1997년 태화강 수질 등급 외 판정…하천 기능 상실
2004년 에코폴리스 선언…10년 마스터플랜 수립
2014년 동식물 1000종 서식 '생태계 보고' 탈바꿈

지난 6일, 울산 태화강 중상류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가 청둥오리떼 사이에서 먹이활동을 하고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 6일, 울산 태화강 중상류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가 청둥오리떼 사이에서 먹이활동을 하고있다. 울산시 제공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산업을 통해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대표적인 산업도시. ‘산업수도’라는 훈장까지 따라붙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90년대만 해도 공장 오·폐수는 정화조를 거치지 않은 채 태화강으로 쏟아졌고, 해마다 물고기 수만 마리가 떠올랐다. 등이 굽은 물고기는 예사였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역겨운 냄새에 창문을 열지 못했다. 지금은 웃돈을 줘야 살 수 있는 ‘리버뷰’ 아파트는 당시만 해도 기피 주택이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난 6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 태화강에서 낯선 오리 한 마리가 포착됐다. 검은색 장발 머리에 허리와 옆구리는 반달무늬로 치장한 ‘호사비오리’였다. 태연하게 먹이활동을 하다 이따금 돌 위에 앉아 젖은 날개를 말렸다. 울산시 관계자는 21일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리며 물고기는커녕 사람들도 외면하던 태화강이었다”며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멸종위기1급 야생생물로 분류된 이 오리는 사람들이 지척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8일,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무리가 태화강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 8일,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무리가 태화강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태화강이 울산의 명실상부한 젖줄로 다시 돌아왔다. 태화강 철새홍보관의 김성수 박사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 복판을 흐르는 강에서 다양한 철새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만큼 물고기 등 먹잇감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라며 “세계 어느 도시의 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생태계를 갖췄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다. 태화강에서는 황어, 은어, 연어, 숭어 등 청정수역에서만 사는 어종들이 계절 따라 찾는가 하면, 2013년과 2014년엔 각각 재첩과 바지락이 나기 시작했다. 이들을 먹이로 하는 안락꼬리마도요, 장다리물떼새 등 희귀 조류는 물론 삵, 수달 등 멸종위기의 포유류도 심심찮게 관찰된다. 최근엔 숭어 치어 떼가 구름처럼 몰려와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들을 태화강으로 다시 초대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태화강 수질 개선에 투입된 시 예산은 9,723억 원에 달한다. 연간 1,000억 원에 가까운 돈이다. 2000년대 중반 울산시의 한 해 살림 규모가 1조 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울산발전연구원 관계자는 “22조 원을 퍼붓고도 ‘녹조라떼’라는 오명을 쓴 4대강사업에서도 확인이 되지만, ‘예산투입=수질 개선’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며 “막대한 예산 못지않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그에 따른 실행력이 태화강을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2004년 에코폴리스를 선언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를 위한 ‘태화강 마스터 플랜’을 수립했다. 1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였다.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공장 폐수 등이 그대로 태화강에 흘러들면서 매년 물고기 수십만 마리가 폐사하는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울산시 제공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공장 폐수 등이 그대로 태화강에 흘러들면서 매년 물고기 수십만 마리가 폐사하는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울산시 제공

복원사업의 첫발은 오염물질이 포함된 강바닥의 흙, 오니를 긁어내는 일이었다. 무려 150만 톤에 달했다. 20톤 덤프트럭 7만5,000대 분량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도루묵이 되지 않도록 집집마다 하수관을 설치하고, 동시에 하루 20만 톤을 처리할 수 있는 언양하수종말처리장, 방어진하수처리장까지 새로 설치했다”며 “이후 60% 안팎의 전국 최저 수준이던 하수처리율을 90%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깨끗하게 처리된 하수 가운데 4만 톤은 매일 다시 흘려보내 강물이 마르지 않도록 했고, 울산항으로 모래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수중보도 철거한 뒤 나무, 흙, 돌 등 천연재로 하천을 손질했다. 강 중류에는 물고기 길을 만들고, 하류에는 축구장 28배(20만3,409㎡) 면적의 둔치에 갈대와 억새를 심어 철새 서식지를 조성했다.

비슷한 시기 기업체와 민간단체는 하천별 담당구간을 정해 ‘1사 1하천 가꾸기’에 나섰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수중 쓰레기와 어망 제거 등 정화 활동을 전개했다. 한때 개발 논리에 밀려 아파트가 들어설 뻔했던 태화들판은 시민들의 ‘태화들 1평사기 운동’ 덕분에 십리대숲, 대나무 생태원, 실개천과 초화단지가 어우러진 생태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1997년 광역시 승격 당시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11.3㎎/ℓ)이 급수 외 판정을 받았던 태화강은 2014년 1등급(1.5㎎/ℓ)을 달성했다. 연어 치어 5만 마리를 풀어도 고작 5마리만 돌아오던 것이 2014년엔 1,827마리로 늘었고, 바지락과 재첩 개체 수도 30배 넘게 증가했다. 먹이가 풍부해지면서 조류와 야생동물도 다시 나타났다. 2014년 생물 종 지표조사에서만 어류 73종, 조류 146종, 식물 632종, 포유류 23종, 양서·파충류 30종 등 1,000여 종의 서식이 확인됐다. 멸종위기 190종 가운데 31종도 관찰됐다.

김병조 시 환경정책과장은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호하게 된다”며 “시민 생태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강과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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