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임기 여성 종사자 많은데도 육아휴직 쉽지 않아
보육교사 32만 명인데 관련 진정은 10건 안팎
원장들은 "인건비 부담" "높은 이직률" 문제 지적
자신이 근무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한 사실을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밝힌 보육교사 A씨는 결국 휴직 승인을 받아냈다. A씨 게시글에 따르면 해당 원장은 올해 9월 휴직 의사를 밝힌 임신 2개월 차 A씨에게 "임신 계획 없다고 해서 입사시켜줬는데 왜 (임신)했냐, 피임을 했어야지"라고 폭언하며 퇴사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퇴사는 물론이고 업계에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으리라 각오하고 관계 기관에 민원을 넣었다"며 "구청과 고용노동부에서 어린이집에 조사를 나오고서야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 근로자에게 보장된 법정 휴가를 가로막으려 했다는 점에서 '초법적 갑질' 사례로 비치겠지만, 보육교사 사이에선 A씨 사례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어린이집 업계 관행, 고용주(원장)의 편의주의 등이 맞물리면서, 아이를 맡아 돌봐주는 일에 종사하는 보육교사가 정작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를 땐 일을 그만둬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내몰리는 셈이다.
21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육아휴직을 쓰려면 적잖은 난관이 뒤따른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시내 사립 어린이집 강사인 장모(36)씨는 원래 보육교사로 일하다가 임신·출산 과정에서 퇴직하고 시간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장씨는 "선배나 동료 교사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임신을 계획한 시점에서 보육교사직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종사자는 "보육교사가 임신이나 육아로 자리를 비우려 하면 원장이 '이 바닥에서 어디 가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냐'라며 협박성 발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보육교사 중 가임기 여성 비율이 높은데도 육아휴직 관련 민원이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업계 관행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직 신청으로 갈등을 겪기보다는 '경력 단절'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어린이집 종사자 육아휴직 사용과 관련한 고용노동부 진정 접수 건수는 △2019년 9건 △2020년 16건 △2021년(1~11월) 8건뿐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이 3만5,352개소, 보육 교직원이 32만5,669명인 점을 감안하면 문제 제기가 적은 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구나 진정 사건 가운데 당국이 조치를 취한 '시정 완료'는 △2019년 4건 △2020년 2건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당사자 잠정 합의 등을 포함한 '기타 종결'로 처리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육아휴직 현황은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어린이집 원장들도 할 말은 있다. 인건비 등 금전적 부담 때문에 육아휴직을 선뜻 승인하기 힘들다는 것. 휴직자가 있으면 이들에 대한 4대 보험료와 퇴직금을 계속 부담하면서 대체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생긴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서울의 민간 어린이집 관계자는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민간기관, 특히 코로나19로 원아가 줄어든 어린이집이라면 보육교사의 휴직 신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보육교사의 인건비(유아반 30%·영아반 80%)를 정부에서 지원받지만, 민간 어린이집은 원아에게 받는 돈으로 운영비와 인건비 모두를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직이 잦은 업계 특성도 거론된다. 전직 어린이집 원장 김모(44)씨는 "보육교사는 연장수당이 없는 경우가 많고 학부모와의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도 크기 때문에 이직률이 매우 높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를 지출하면서까지 육아휴직을 장려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출산 및 육아에 따른 부담을 보육교사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어린이집 재정이나 인력 사정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보육교사들이 육아휴직 제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어린이집처럼 육아휴직 및 출산휴가 대상자가 많이 종사하는 업종에 대한 지원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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