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1분기 전기요금 사실상 동결
한전 적자 심화, 요금 폭탄 우려 확산

20일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차고 넘치는 인상 요인에도 물가 안정에 방점을 둔 정부 기조에 따라 후퇴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업계 안팎에선 내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민 경제의 부담으로 지목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팽배하다. 정부는 특히 이번 결정으로 올해부터 본격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의 취지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선 전기요금의 인상 부담을 사실상 차기 정권에 떠넘겼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0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0원으로 결정하고 이를 한전에 통보했다. 매 분기마다 연료 구매에 쓴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하고, 분기당 상·하한 폭을 적용하면 ㎾h당 3원 올려야 한다는 게 한전 입장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한 정부가 한전에 인상 유보를 통지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의 이런 방침을 받아든 한전 측은 난감하단 입장이다. 실제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 단가의 기준인 평균 실적연료비(2021년 9∼11월 평균)를 살펴보면 킬로그램(㎏)당 평균 가격에서 유연탄은 181.81원, 액화천연가스(LNG)는 832.43원, BC유(벙커씨유)는 661.27원에 거래됐다. 이는 올해 4분기 전기요금 책정 기준으로 반영됐던 가격(2021년 6~8월 평균)에 비해 유연탄은 30원, BC유는 86원, LNG는 230원 이상씩 인상된 수준이다. 한전에서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29.1원으로 산정하고, 상한선인 3원 인상안으로 정부에 건의한 배경이다.
한전의 이런 요청에, 정부가 동결로 답하면서 곳곳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올해 2,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한 정부가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까지 0원으로 묶어뒀다는 비판에서다. 요금 인상 요인이 산적한 상황을 감안할 때 추후에도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더 거세질 게 뻔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한전 적자폭 확대를 부추긴다는 비난 여론도 들끓고 있다. 한전은 지난 3분기 기준, 1조1,298억 원의 누계 영업적자를 냈다. 한전 내부에선 올 한 해 영업손실 규모를 4조3,000억 원 이상으로 점치고 있다. 공기업 적자를 향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를 고려하면 이번 전기요금 동결은 결국 차기 정권에 세금폭탄을 떠넘긴 셈이다.
무엇보다 근시안적 에너지요금 정책으로, 연료비 연동제 도입 취지를 또 한 번 무너뜨린 데 대한 비판이 크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전기요금 횡보가 향후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의 전력구입비라고 할 수 있는 전기도매가격(SMP)이 지난해 올해 초 50원대에서 최근엔 140원대로 올라섰고, 내년엔 150원대까지 올라갈 전망”이라면서 “현재로서도 SMP 상승폭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한데, 향후 탄소중립 이행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비용 부담을 어떻게 메울지 걱정되는 실정”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이어 “한전 입장에선 전력을 공급하면 공급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입장이라 앞으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적자가 커진 데 따른 이자도 높아지는 데, 결국 국민 부담만 커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 유보에 따른 미조정액을 추후 요금조정 시 총괄원가로 반영해 정산할 방침이다. 사실상 이번 인상분에 대한 부담을 나중으로 미룬다는 얘기다. 한전 관계자는 “내년에 적용할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을 산정하고 있다”며 “국민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금에 반영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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