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현장보다 사람이 돋보일 때가 있다. 아니 사람의 온기가 채워져야 비로소 현장은 살아난다. 묵묵히 쌓은 작은 성과는 큰 울림을 낳는다. 선한 영향력은 세 치 혀가 아니라 뚜벅뚜벅 발걸음에서 비롯된다. 9년이라는 긴 세월 홍승훈(37) 새마을세계화재단 인도네시아사무소장은 오직 한길을 걸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족자)특별자치주(州)에 거점을 두고 시골 곳곳을 누빈다. 서부자바주 수방에선 2년여 만에 '쓰레기 없는 마을'을 일궜고, 족자 블레베란 마을에선 버섯 재배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성공회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에게 모두 생소한 분야다. 공부와 경청, 오로지 현장이 그의 실력이다.
"어쩌다 밀려온" 곳이 인도네시아다. 그는 2013년 2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으로 연을 맺은 이 땅에 2015년 7월부터 새마을 정신을 이식하고 있다. '새마을'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정치적 색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의 지원으로 시골 마을의 환경이 개선되고 부가 수익을 올린 여성들이 살맛 난다면" 그걸로 족하다.
주민들은 그를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홍 반장'마냥 따른다. 특히 여성들의 신뢰가 두텁다. 수방에선 넘쳐나던 쓰레기를 스스로 치운 덕에 자녀들의 만성 질환이 사라졌고 쓰레기를 수집해 받은 돈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전엔 먹어 보지도 못했던 버섯을 키우는 방법까지 알게 된 블레베란 아낙들은 가정에서 발언권이 커졌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남편을 자신의 버섯 농장에 고용(?)한 아내도 있다. 각각 2년, 4년 넘게 그를 믿고 따르면서 시나브로 환경의 소중함과 자립의 가치를 누리게 된 셈이다.
최근 2년은 힘든 시기였다. 6월에는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값싼 비료를 제공하려고 길을 나섰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홀로 집에서 사경을 헤맸다. 작년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머나먼 타국의 3대 독자 아들에게 아버지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올바르게 잘 살고 결혼도 하렴.' 유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이런 소신을 붙들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사람이 희망이고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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