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인식 늘어나며 판매 환경 개선 목소리
업주들은 "동물권만 중시하나… 현실 감안해야"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인근의 청계천을 따라가다 보면 동물 울음소리로 유난히 시끄러운 길이 있다. 작은 애완동물을 파는 펫숍 10여 곳이 모여 있는 이른바 '애완동물 거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지난 17일 애완동물 거리에선 햄스터, 다람쥐, 기니피그,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들이 가게 밖 케이지 안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폭이 두 뼘 남짓한 철제 케이지 안에는 햄스터가 20여 마리 있었고, 다람쥐 네 마리는 털이 다 빠진 앙상한 꼬리를 말아 올린 채 사료통 안에서 체온을 나눴다. 사랑앵무새는 10~20마리씩 유리 상자에 담겨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시민들은 케이지를 툭툭 건드리고 손을 집어넣어 앵무새를 꺼내 만지기도 했다.
동물보호법에는 소, 돼지, 닭 등의 가축과 강아지, 고양이에 대한 사육·판매 기준만 있을 뿐 반려동물 판매 환경에 대한 구체적 조건은 없다. 동물판매업 등록 조건도 '사육설비가 직사광선, 비바람,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료와 물을 주기 위한 설비와 동물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기초적인 사안만 규정돼 있다. 판매 환경은 전적으로 판매자 재량에 달린 셈이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펫숍의 동물 서식 공간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판매업자들은 동물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펫숍 환경, 동물 학대나 마찬가지
동물권 단체와 일부 시민들은 펫숍의 판매 행태가 동물 학대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좁은 우리에 여러 마리의 동물을 모아 두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2년째 햄스터를 키우고 있는 성은경(24)씨는 "동물이 작다고 느끼는 고통도 작은 건 아니다"라며 "여러 마리를 함께 두면 서로 잡아먹는 햄스터를 20~30마리씩 모아놓은 것 자체가 학대"라고 말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동물은 시설만 있다고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하다"며 "정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고, 동물 특성에 맞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줘야 한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이 반려동물보단 가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규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환 동물권 단체 케어 대표는 "반려동물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동물들이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은 구비돼 있지 않다"며 "동물 판매 조건을 엄격하게 설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펫숍도 영업인데 동물권만 중시하나"
반면 애완동물 판매자들은 모든 동물에게 완벽한 서식환경을 제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반박한다. 동물 특성에 맞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면 그만한 경제적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청계천에서 조류를 판매하는 이상화(49)씨는 "매일 아침 먹이 주고 청소도 해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하는데 동물단체에서 무조건 문제 제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류와 파충류 펫숍을 운영하는 한 판매자도 "들여온 동물들은 매장에 오래 있지 않고, 대부분 1주일에서 한 달이면 팔린다"며 "우리도 가게 임대료를 내는 입장인데 어떻게 모든 개체를 큰 사육장에서 키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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