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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입력
2021.12.18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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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사람들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회사에서는 너무 많은 업무와 불합리 때문에 소진되는 느낌을 받으며 이 일 대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일을 하게 되면 마침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올해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고 했다. 그는 아주 안정적인 회사에 다녔다. 확실한 캐시 카우가 있어서 적당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급여는 적당했고 워라밸은 아주 좋았다. 처음에는 그 평온한 인생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서른이 가까워졌다.

'서른'. 더 이상 아직 어리다는 말로 평가를 이연할 수 없는 나이. 내 인생의 중간 성적표를 받아 드는 나이다. 친구는 돌아보니 내가 뭘 하고 살고 있나 현타를 느꼈다고 했다. 워라밸이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발전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시장분석을 하고 기획을 해도 지나가다 던진 오너 일가의 한마디에 배는 산으로 갔다. 나중에 기억이나 할지 모를 그 한마디에 팀장은 꼼짝도 못했다. 팀장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커리어가 걱정되었다. 이 일을 해서 앞으로 10년, 20년 먹고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자 일이 재미도 없었다. 내게 맞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진짜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다.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갖가지에 도전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베이킹을 배우고 운동을 시작했다. 해외 취업에 도전했고 오퍼도 받기도 했다. 조건을 비교한 끝에 국내에 남았지만 말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간 배우고 싶었던 것을 모두 했다. 남들은 퇴사할 용기가 없어 감히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이전에 하던 동일한 직무로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의외의 결정에 놀라 이유를 물었다.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고. 취미로 할 때는 좋아 보였는데 일이 되니까 즐겁지가 않았다. 그는 커피를 아주 좋아하지만, 커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은 카페에 가서 돈 쓰는 걸 좋아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쉬는 것도 처음 한두 달만 좋았지 나중에는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제 미련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커리어는 얼마든지 바꿔도 된다. 너무 늦은 결정이란 건 없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속도로 스스로의 길을 걸어 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집중하자. 당장의 힘듦과 권태 때문에 도피한 곳에 구원은 없기 때문이다. 뭐든지 일이 되면 힘들고 빛 아래에는 어두움이 있다. 막연하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힘들어도 부딪히고 이겨 내면서 내 길을 찾아가자.

곧 또 다른 새해가 밝는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결심을 할 때다. 전국의 모든 서른 즈음 이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나가는, 행복한 연말 연초 되기를.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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