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시작된 임시국회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도쿄=AP 연합뉴스
‘듣는 힘’을 강조해 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야당의 질의에 진지하게 답하고 잘못에는 바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과 소통 능력이 부족해 지지율이 급락했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나 야당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종종 노출됐던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비해 변화된 기시다 총리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상대 질문 끄덕이면서 들어" "10만 엔 지원금, 빠른 방향 전환"
일본 국회 예산위원회는 의원들이 총리와 각료 등에게 직접 질의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공영방송 NHK가 생중계한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첫 번째 예산위 공방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을 실었다. 미국 유타대의 아즈마 쇼지 교수(사회언어학)는 “전반적으로 잘 대응하는 것 같다”면서 “논전을 통해 ‘듣는 힘’을 발휘하려는 자세가 전해져 왔다. 특히 상대의 질문을 끄덕이면서 듣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18세 이하에게 10만 엔씩 주는 지원금과 관련, 애초 5만 엔은 쿠폰으로 주려고 했으나 천문학적 행정비용이 소요되고 지자체의 사무 부담도 심각해진다는 야당의 지적이 잇따르자 “10만 엔 전부 현금으로 줘도 된다”고 비교적 빠르게 전환했다. 첫 번째 ‘실정’으로 지목될 수 있었지만 즉시 방침을 수정하고 빠르게 유감을 표명하면서 야당도 더 이상 추궁하기 어렵게 됐다.
'벚꽃을 보는 모임' '아베노마스크' 등 아베 실정에 "반성"
전 정권의 실책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잘못이라 인정했다. 아베 전 총리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수 있는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한 질의가 대표적이다. 기시다 총리는 “오랜 세월 관행으로 이뤄져 왔지만 초대자 수가 너무 많아지고 초대의 기준도 모호해졌다. 국민들로부터 엄격한 비판을 받았다”면서 “적어도 기시다 내각에 있어서 ‘벚꽃을 보는 모임’은 개최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일명 ‘아베노마스크’로 불리는 천 마스크의 재고 문제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확실하게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전 내각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대 초기 마스크 부족 현상을 해소한다며 천마스크를 대량 주문했지만 품질이 나빠 받지 않겠다는 시설이 많았고, 결국 올해 3월 말 기준 8,200만 장이 창고에 쌓여 보관료도 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외교 안보 현실감각" 전문가 긍정 평가... 야당도 공격적 자세 바꿔
도쿄도립대 다쿠마 가요(국제정치학) 교수는 “외교 안보 논의에서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균형감이 빛났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 등 당내 보수파는 예산위에서 연일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따라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기시다 내각은 내부적으론 각료를 보내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적절한 때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쿠마 교수는 “이 문제에서 미국·영국과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면 중국의 경제보복을 각오해야 한다”며 “어느 정도는 중국의 체면을 세우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10월 31일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참패하면서 대여 공략 기조를 바꾼 것도 기시다 총리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전 아베·스가 내각 당시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예산위에서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몰아붙였지만 한편으론 “대안 없이 반대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거 참패 후 에다노 대표가 물러나고 당선된 이즈미 겐타 신임 대표는 ‘정책 제시 야당’을 표방해 예산위에서 공격적인 모습보다는 대안 제시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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