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신소서 받은 정보로 살인 강간까지
해킹하고 위치 추적기에 경찰 매수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 강화해야"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5)이 심부름센터를 통해 피해자 주거지를 알아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흥신소에서 흘러 나온 개인정보가 강력범죄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업이 사실상 합법화됐지만, 불법 개인정보 수집 문제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미비해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국일보가 최근 2년치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흥신소에서 받은 정보를 범죄에 활용한 사례는 모두 14건에 달했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통해 201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흥신소’ 또는 ‘심부름센터’가 포함된 판결문 72건을 분석한 결과다.
범죄 종류별로 살펴보면 살인 또는 살인미수 3건, 강도 2건, 강간 2건 등 강력범죄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A씨는 이혼한 전 부인의 집 앞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머리 부위 등을 수차례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B씨는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주거지로 찾아가 강간했다. C씨는 중학교 동창인 여성에게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하다가 여성 주거지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흥신소를 통해 피해자 주거지와 연락처 등을 파악했다.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의뢰인에게 전달한 흥신소도 있었다.
강력범죄 발생해도 흥신소 운영자 실형 면하기도
판결문 분석 결과 흥신소는 위법한 방법으로 피해자 개인정보를 수집해 가해자에게 제공했다. 한 흥신소는 해커를 고용해 통신사 서버를 해킹한 뒤 휴대폰 소유주 41명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85회에 걸쳐 빼냈다. 경찰에게 4년간 1,500여 만원의 뒷돈을 주고 개인정보를 174회 조회한 경우도 있었고, 승용차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실시간 위치 정보를 파악하기도 했다.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한 뒤 범죄로 이어지는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은 미약했다. 최근 2년간 흥신소 관계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5건에 불과해, 실제 범죄로 이어진 14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량이 낮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가 대부분으로, 집행유예나 최대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한 흥신소 운영자는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가 납치·감금 범죄에 악용됐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전문가들, '흥신소 처벌 강화' 한목소리
전문가들은 흥신소가 강력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큰 만큼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한 사람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피해자 거주지 등 개인정보를 직접 파악하려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흥신소를 찾는 것”이라며 “단순 개인정보 유출이 아니라 강력범죄로 이어졌을 땐 흥신소에 대해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흥신소를 포함한 사설 탐정 규제 법안이 신속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위원은 “강력범죄가 발생했더라도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형량은 대부분 집행유예”라며 “변호사가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면허가 박탈되는 것처럼, 규제 법령이 만들어져야 효과적으로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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