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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돌본, 환자였던 경험 바탕으로...각기 다른 절정 이룬 두 미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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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돌본, 환자였던 경험 바탕으로...각기 다른 절정 이룬 두 미국 시인

입력
2021.12.17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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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 외
앤 섹스턴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짐 자무쉬 감독의 2016년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일상을 그린다.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은 매일 아침 6시쯤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동료와 인사를 나눈 뒤 23번 버스를 운행하고 퇴근하면 반려견과 동네 산책을 한 뒤 단골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잠에 든다.

언뜻 시시해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에 비밀스러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시’다. 패터슨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로 기록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도 시 안에서는 거대한 사건이다.

패터슨이라는 도시, 패터슨이라는 인물, 패터슨이라는 시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1883~1963)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아름다움의 엄밀함은 바로 탐구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마음속 지난날 모든 불만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겠는가?”라는 서문으로 시작해 “껍데기들과 작은 벌레들/보통 또 그렇게 인간에게,/패터슨에게.”로 끝나는 윌리엄스의 시 ‘패터슨’은 영화에 그대로 포개진다. 실제 짐 자무쉬 감독은 윌리엄스의 고향인 패터슨을 여행하다가 이 영화 ‘패터슨’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평생 같은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평생 같은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다.


윌리엄스의 대표 시를 모은 ‘패터슨’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가 정은귀 한국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번역으로 출간됐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윌리엄스의 시집이다. 영화로 알려졌지만, 윌리엄스는 1963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내셔널북 어워드를 수상한 미국의 20세기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삐죽삐죽 선이 안 맞는 지붕,/오래된 닭장 철조망과 재,/못쓰게 된 가구들이 잡다하게 들어찬 마당,/울타리, 통나무 널빤지와/상자 조각들로 지은/바깥 화장실, 그 모두를” 즉, ‘그 저 초라한 이들의 집들을’ ‘대단타 바라보는’ 시의 시선은 실제 윌리엄스의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윌리엄스는 평생 같은 지역에 살며 40년간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받아낸 소아과 겸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했다. 영화 '패터슨' 속 버스 운전기사처럼, 매일 병원으로 출근해 자신이 만난 환자들과 미국의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시로 옮겼다. 가난한 도시 풍경, 소외된 민중, 남루한 일상을 과장도 비애도 없이 객관적인 시선 안에 담아냈다.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정은귀 옮김. 민음사 발행. 각 420쪽ㆍ504쪽. 각 1만5,000원ㆍ1만6,000원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정은귀 옮김. 민음사 발행. 각 420쪽ㆍ504쪽. 각 1만5,000원ㆍ1만6,000원


윌리엄스가 묵묵한 일상을 살아내며 시상을 건져 올렸다면, 같은 시기 국내 출간된 앤 섹스턴(1928~1974)의 시선집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는 윌리엄스의 시집과는 정확히 반대의 자리에 놓일 책이다. 섹스턴 역시 윌리엄스와 마찬가지로 현지에서는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주요 시인이지만 국내에는 지난해 11월 민음사 세계시인선(‘밤엔 더 용감하지’)을 통해 초역됐다. 이번 시선집은 총 11권에 달하는 섹스턴의 시 중 절반가량을 묶은 것으로 신해경 번역가가 옮겼다.

섹스턴은 1960년 첫 시집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반쯤 돌아와’로 미국 문학계에 일대 충격을 주며 등장했다. 1974년 마흔다섯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자신의 내밀한 삶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1966년 발표한 시집 ‘죽거나 살거나’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널리 받았지만 그 자신의 삶은 정신질환과 자살 충동, 알코올과 니코틴 중독, 성폭력과 불륜, 낙태 등으로 순탄치 못했다. 사회적 금기를 소재로 삼았기에 ‘미친 주부’ ‘마녀’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같은 명명은 오히려 예술가와 주부의 역할을 모두 충족시켜야 했던 당시 여성의 위치를 선명히 드러낸다.

앤 섹스턴은 정신질환, 자살 충동 등 개인적이고 고백적인 시로 이름을 떨쳤다.

앤 섹스턴은 정신질환, 자살 충동 등 개인적이고 고백적인 시로 이름을 떨쳤다.


“어릴 때 이웃에/우리가 마녀라고 부르던/늙은 여자가 있었지/(…)/요즘 종종 그 여자를 생각하며/내가 그 여자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마녀의 삶’ 중)

“나는 밖으로 나갔네, 헛것에 씐 마녀/(…)그런 여자는 죽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나는 그런 여자였네.”('그런 여자' 중)

평생 쉼 없이 환자를 돌보며 그들의 소박한 삶을 시로 옮겼던 윌리엄스와 그 자신이 환자였으며 치료의 방편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던 섹스턴. 두 시인은 시의 동력도 풍경도 달랐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 겨울 두 시인을 함께 읽는 일은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다채로운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 앤 섹스턴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발행. 736쪽. 2만8,000원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 앤 섹스턴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발행. 736쪽. 2만8,000원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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