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시상식
“소설은 그 어떤 장르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바깥을 향해, 독자를 향해 팔을 벌리고 공간을 만들어주는 장르라는 생각을 합니다. 쓰기 전에는,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뛰어들어서 감각하고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움직이며 가 닿는 소설 안의 어떤 자리, 그 자리를 함께 나눌 때의 그 짧고도 강렬한 기쁨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제가 펼쳐놓은 세계에 끝까지 책임을 갖고 쓰겠습니다.”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눈으로 만든 사람’을 쓴 최은미 작가는 1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연세세브란스 빌딩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눈으로 만든 사람’은 여성-가족-사회를 둘러싼 첨예한 문제의식을 관습적 재현 대신 자신만의 폭발적이고 독창적인 서사로 완성시킨 소설집이다. 심사위원들은 “강렬한 정념으로 압도적인 독서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최 작가는 이날 “내 등단 연차수와 똑같은 나이로 자라온”, “나를 과거와 대면하게 해주고, 미래에 닿게 하는 동시에 가장 격렬하게 현재를 살게 하는” 딸에게 특히 감사를 표했다. “딸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딸을 떼어놓고 나와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았다”며 “딸이 성인 여성이 되어 살아가게 될 십 년 후의 세상을 생각하며 계속 살고, 계속 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심사를 맡았던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눈으로 만든 사람’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며 “본심에서 여러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집을 설명하기 위해 ‘압도적’이라는 말을 써야 했다”고 상찬했다. 권 평론가는 이어 “최은미 작가의 소설은 인물들에게서 고통 속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소멸을 향한 욕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힘을 발견해낸다”며 “그녀들은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정직했기 때문에 혼란과 동요의 끝까지 갈 수 있었고, 같은 힘에 의지해서 혼란과 동요를 뚫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축사는 윤성희 작가가 맡았다. 윤 작가는 “최은미 작가의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읽고 이상한 경험을 했다”며 “휩쓸려버렸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어쩜 이렇게 쓸 수가 있지, 내가 절대 다가가지 못할 세계를 그리는 방식을 감탄하게 된다”면서 “그때 느끼는 질투와 부러움이 작가들의 우정에는 필수고, 질투의 너머에는 존경과 고마움이 있다"며 최 작가를 향해 응원을 보냈다.
이영성 한국일보 사장은 최 작가에게 상금 2,000만 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시상식에는 은희경 윤성희 전석순 정세랑 박진규 소설가, 황종연 서희원 한영인 문학평론가, 이근화 시인, 문학동네 염현숙 김소영 대표, 이현자 편집국장, 이상술 김내리 편집자 등이 참석했다.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은 1968년 제정돼 올해로 54회를 맞았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출판된 소설ㆍ소설집 중에 수상작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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