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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포퓰리스트' 집권 세력 권좌마저 흔드는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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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포퓰리스트' 집권 세력 권좌마저 흔드는 인플레이션

입력
2021.12.14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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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저물가 속 정권 공고히 해와
코로나로 물가 치솟으며 인기 '흔들'
내년 선거 앞두고 금리인상 등 주저
시민들 정권 퇴진 요구 시위 이어져

지난 10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민들이 가스를 사기 위해 길 게 줄을 서있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지난 10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민들이 가스를 사기 위해 길 게 줄을 서있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지구촌을 덮친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쓰나미가 각국 정권을 쥔 우파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지도자들의 권좌까지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 속에 전 세계 자금을 끌어모아 권력 기반을 다져 왔지만, 감염병이 불러온 초(超)인플레이션 공포에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는 것이다.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려면 돈줄을 조여야 하나, 당장 선거를 목전에 둔 이들은 되레 ‘돈 뿌리기’에 나서고 있다.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시민들의 퇴진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저성장 수혜 누려온 우파 포퓰리스트

1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내년과 2023년 선거를 앞둔 우파 정상들이 세계적 물가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견고했던 정치 지형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11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18년간 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이들 3국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저성장·저물가 수혜를 누려 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자, 각국 투자자들이 고위험·고수익을 좇아 신흥 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금 유입에 경기는 당연히 호황을 맞았고,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이를 자신의 성과로 포장했다.

물가 급등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지도자들. 왼쪽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물가 급등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지도자들. 왼쪽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실제 2018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추자 미국 투자자들은 브라질 채권을 대거 사들였다. 당시 막 정권을 잡은 보우소나루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터키도 2009년 급격한 경기 침체에 빠졌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차입이 급증하면서 빠르게 정상 궤도를 회복했다. NYT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집권 기간, 개발도상국으로 자금이 흐르면서 그들에겐 경제적 순풍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거시경제 환경은 권위주의자들에게는 ‘신의 선물’이었다”(다론 아제모을루 미 매사추세츠공대 경제학 교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이 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공급망 붕괴,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세계 2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신흥국 물가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브라질 물가상승률은 연 10.7%에 육박했다. 주식인 쇠고기값은 43%나 폭등했고, 전기·가스비도 1년 사이 30% 넘게 올랐다. 터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20%를 돌파했다. 일주일 사이 밀가루 가격이 두 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자고 일어나면 물건값이 뛴다”는 얘기도 잇따른다. 리라화 가치는 올해에만 45%나 폭락했다. 헝가리 소비자 물가 역시 2007년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선거 앞두고 ‘돈줄 조이기’ 자제

물론 인플레이션이 이들 나라만의 당면과제인 건 아니다. 문제는 각국 정부가 발 빠르게 정책 방향 선회에 나선 것과 달리, 우파 포퓰리스트가 집권 중인 브라질·헝가리·터키는 대응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전통적인’ 해결책은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것, 다시 말해 기준금리 인상인데, 이들 3국은 이런 공식 적용을 주저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탓이다.

지난달 24일 터키 앙카라의 환전소 앞에서 한 시민이 지폐를 확인하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45%나 폭락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터키 앙카라의 환전소 앞에서 한 시민이 지폐를 확인하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45%나 폭락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브라질과 터키는 각각 내년과 2023년 대선을 치른다. 보우소나루와 에르도안의 출마는 예고된 수순이다. 헝가리도 내년 초 총선이 예정돼 있다.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과 고용엔 타격을 입히는 터라,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에르도안은 “선거 때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여기에다 또 다른 ‘헛발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과 헝가리는 최근 유권자들에게 현금을 대거 뿌렸다. 재정지출이 늘면서 가뜩이나 폭락한 통화 가치는 더 추락했고,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도 뻔해졌다. 터키는 물가가 치솟는데도 석 달 연속 기준금리를 4%포인트나 끌어내렸다. 당장 시중에 현금량을 늘려 ‘반짝’ 경기 회복에 나서겠다는 복안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참다 못한 시민들의 분노는 결국 폭발했다. 지난달 24일 터키 이스탄불, 앙카라 등 전역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로 뛰쳐나가 “에르도안은 나라를 떠나라”고 외쳤다. 브라질에서도 보우소나루 퇴진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진 미흡한 코로나19 대응이 이유였다면, 최근 들어선 물가 급등과 기아 확산에 대한 항의가 많다. 보우소나루 지지자였던 루시아 헤지나 다 시우바(65)는 NYT에 “나는 정부가 우리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믿었지만 틀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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