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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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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입력
2021.12.14 18:00
수정
2021.12.14 21:3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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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연구자 감희 "北 주민, 집단주의 통해 스스로 보호"
북한 주민 내면 세계 분석 '북한 사람 이해하기’ 출간

북한에서는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북한 사람들의 충성심에서 찾는다. 그들이 주체·선군사상을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는 해석이다. 오랫동안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돼 세뇌를 받아왔기 때문에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는 우려 섞인 추정도 뒤따른다.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대로 북한 사람들은 언제나 장군님을 위해서 ‘인간폭탄’이 될 각오를 품고 살아간다는 인식이다.

북한 정치체제가 북한 사람들에게 입힌 트라우마를 연구해 온 탈북자 출신 연구자 감희(가명)씨는 이러한 주장을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규정하고 부정한다. 어린이들이 '장군님'을 찬양하면서 춤추는 모습 등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보여주면서 체제의 견고함을 과시하는 북한 체제의 선전 전략이 외부 세계에 먹혀들었을 뿐, 실상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북한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신경생리학적으로 분석한 저서 ‘북한 사람 이해하기’를 지난달 내놓은 그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감희씨가 북한 사람들의 내면세계,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감희씨가 북한 사람들의 내면세계,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북한 사람들도 국경 너머의 삶 알아

감희씨는 ‘북한 사람들은 개인적 욕구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도록 세뇌당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세간의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북한 사람들 역시 남한 사람들만큼이나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국경 바깥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감희씨는 “북한이 외부와 절연돼 모른다고 하지만 엄청나게 틈새가 많다”면서 “1990년대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초호화판 생활을 한 것을 북한 사람들도 다 안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서 남한의 라디오나 TV 공중파 방송을 시청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고 요즘 국경지대에서는 중국 통신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남한의 지인과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감희씨 역시 자유 찾아서 탈북

무엇보다 감희씨 스스로가 자유로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18년 전에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다. 그는 할아버지가 지주였다는 이유로 적대계급으로 분류됐고, 북한에서 교육과 복지, 취업 등 모든 사회활동에서 최하층 대우를 받았다. 우수한 학업 성적을 거뒀지만 대학 진학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탈북 여성의 폭력 경험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로 상담코칭학 박사학위를 받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감희씨는 “당시에 임수경이 비행기를 타고 개별적으로 북한으로 왔다는 거, 와서는 한국과 미국을 욕한다는 거. 이것은 북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자유였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북한에서 남한을 비방하려고 민주화 시위 장면,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맞아 끌려가고 피가 흐르고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을 많이 보여줬다”면서 “그런데 사람들 얼굴이 멀쑥하고 살이 찌고 옷도 잘 입고 건물도 높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시위는 북한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 외부에 자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북한에서는 1970년대부터도 계속 알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감희씨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호 의존하며 스스로를 지키며 보호하는 신경계의 기능이 작동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으로 대표되는 북한의 폭력적인 정치체제가 북한 사람들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태어난 북한 사람들은 불만을 드러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이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신경계가 민감해져 작은 자극에도 얼어붙게 되고 저항 의지를 상실한다고 감희씨는 설명했다. 그들의 친사회적 집단행동은 높은 충성심의 표현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모방 행동이라는 것이다.

감희씨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도록 진화했다"며 "화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몰라도 누군가 소리 지르며 달리기 시작하면 겁이 나서 함께 뛰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주민을 감시하고 조직생활을 강요하는 체제에서 자라는 북한 사람들의 뇌는 집단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도록, 집단행동을 따르도록 작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서에서 감희씨는 ‘대다수 탈북민은 처음에 중국에서 사람들이 최고 존엄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어를 떼어내고 함부로 부르는 것에 불안하고 몸이 떨렸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존칭어를 떼고 최고 존엄을 호칭하는 순간 탈북민들에게 스트레스 상황에 반응하는 자율신경계의 생리학적 변화가 나타나며 이것이 북한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설명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감희씨는 소개했다.

북한의 민주화 불가능한 일은 아냐

그러나 감희씨는 북한에서도 1990년대 이전부터 그들만의 저항이 이어져 왔다고 말한다. 다만 조직적 저항이 아니라 절대적 권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의 비조직적인 저항 형태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권위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이고 훔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감희씨는 이것을 ‘약자의 저항 방식’이라고 불렀다.

감희씨는 “생존을 위해서 신발 만드는 공장에서는 신발을 도둑질하고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서는 비료를 도둑질한다"며 "낮에는 사회주의 하고, 밤에는 자본주의 한다’는 말이 북한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통 돌아가는 말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보기관 관계자들마저 뒤에서는 돈주(신흥 부유층)들과 협력해 ‘비사회주의(자본주의) 행동’을 저지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전쟁을 직접 겪었던 세대가 사라지고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녀 세대가 성장하는 상황이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감희씨는 내다봤다. 생계를 보장하지 않는 체제를 향한 불평불만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희씨는 “나도 불만이 있고 너도 불만이 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고, 시간이 걸려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희씨는 “북한 사람들은 좋든 나쁘든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되고, 언젠가는 함께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그들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감희씨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연구자로 18년 전 북한을 탈출해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전체주의 북한체제의 트라우마 및 북한 사람들의 트라우마와 치유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가명을 썼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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