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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우산'을 든 여성들

입력
2021.12.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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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성노동자 폭력 피해 근절의 날

여성 성노동자 인권의 상징이 된 붉은 우산. SWOP-USA 사진

여성 성노동자 인권의 상징이 된 붉은 우산. SWOP-USA 사진

약 20년간 미국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 인근 여성 성노동자 49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그린 리버 킬러' 개리 리지웨이(Gary Ridgway, 1949~)가 2003년 12월 18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하루 전인 12월 17일 성의학자와 성노동자, 인권운동가 등이 설립한 성노동자 지원단체(SWOP-USA)가 집회를 열어 '국제 성노동자 폭력 피해 근절의 날'을 선포했다. 성노동자 증오범죄와 구타·강간·살인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환기하려는 취지였다. 그들은 슬로베니아 작가 타데이 포가차르(Tadej Pogacar)가 성노동자들과 협업해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상징적 조형물 '매춘 전시장(Prostitute Pavilion)'과 성노동자 인권의 상징이 된 '붉은 우산 행진'에 착안, 집회에서 붉은 우산을 들었다.

매춘은 1984년 공창제를 합법화한 호주 빅토리아주와 스위스(1992), 미국 네바다 주 등 10여 개 국가·지역을 제외하면 미국 전역을 비롯, 대다수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한 행위다. 성노동자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어서 인권과 법익의 사각지대에 놓이곤 한다. 성노동자 범죄 피해는 'SWOP-USA'의 주장처럼, 언론에 잘 보도되지도 않고, 좀체 주목받지도 않으며, 경찰 수사도 허술해서 처벌받는 범죄자도 극히 적은 게 현실이다. 여성인권단체들 역시 성노동자 폭력 피해와 별개로 성노동자의 존재를 젠더 착취구조를 지탱하는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법적·사회 문화적 낙인은 성노동자의 가시화를 막고, 정당한 권리 요구조차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

법과 현실, 당위와 생존이라는 더 절박한 윤리 사이에 끼어 신음하는 그들을 위해, 그들을 대신해서 또 그들과 함께 부당한 현실을 바꿔 가자는 취지로 2005년 유럽 국제 성노동자 인권위원회(ICRSE, 현 ESWA)가 출범했고, 현재 유럽과 아시아 35개국 100여 개 단체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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