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에 '배달료'를 주제로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방송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쾌하지 않았지만 방송작가의 마음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알겠다 하고 잊었다.
그날 오후에 다시 방송편성이 됐다고 촬영이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다. 다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고, 막상 답을 하려고 보니 금요일 저녁 6시를 넘겨버렸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주말 지나고 업무시간에 연락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도 들어 월요일 오후에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 취기와 울음이 섞인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이었다. 그는 지난주 방송이 엎어지고, 다시 방송이 잡히는 과정에서 섭외하려던 출연자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주말 내내 좌절하고 있었다. 인터뷰 펑크에 사과하면서 하소연했다. '저도 라이더랑 똑같아요. 지난 방송 못 나가서 돈도 못 받았어요.' 그는 방송국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라 방송국과 계약한 프리랜서 작가였다. '해주실 거죠?' 같은 건당 인생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방송작가와 지지고 볶았던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오후나 저녁방송인 경우에는 새벽같이 전화가 오고, 아침 방송이면 밤 8시나 10시에도 전화가 온다. 주초 방송이라면 주말도 마다하지 않는다. 간단히 통화가 끝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길면 다음 날 방송이거나 당일 방송 섭외 전화인데, 다뤄야 할 내용은 산업의 구체적인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거나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전문가들도 어려운 내용들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도 이 짧은 시간에 홀로 내용을 준비하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방송에 내보낼 거리가 있는지, 방송에 내보내도 될 사람인지 확인도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다. 통화가 10분 정도 넘어가면 내 목소리에도 피곤이 묻어난다. 상대의 짜증 섞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섭외에 성공하면 작가는 사전 질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작가들은 질문지를 미리 보내준다고 하는데 단 한 번의 통화나 검색 몇 번의 질문지 작성은 없다. 나중에 질문지를 메일이나 카톡으로 받아보면 새벽시간이나 아침인 경우가 많다.
노동 강도가 높고, 전문성과 책임감까지 갖춰야 할 직업이지만 방송국은 방송작가들을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는다. 방송작가뿐만이 아니다. PD나 카메라맨들도 KBS, SBS 등 소속방송국의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프리랜서, 개인사업자,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노동법상 권리를 박탈당하고 건당 소득을 얻는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간접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부분적으로만 노동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약 1,000만 명이 노동법 바깥에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9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플랫폼 기업을 사용자로 추정하여 플랫폼 노동자 보호입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회사가 종사자 보수 수준을 결정하거나, 업무에 대한 관리 감독 및 평가를 하는 등 실질적으로 사용자 역할을 하면 노동법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가능할지 다루고 싶은 방송국이 있다면 자신과 계약한 방송작가를 출연시키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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