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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12월 16일17세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최초 공개한 고 김학순 할머니 별세

입력
2021.12.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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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16일
국내 피해자로 첫 고백, 이후 위안부 증언 이어져
김 할머니 첫 증언 8월 14일 '기림의 날' 지정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92년 1월 13일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벌어진 ‘정신대 피해보상 요구 시위’에서 고 김학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역사의 뒷전에 숨겨져 있던 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린 보도사진으로 평가받아 제29회 한국보도사진전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1월 13일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벌어진 ‘정신대 피해보상 요구 시위’에서 고 김학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역사의 뒷전에 숨겨져 있던 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린 보도사진으로 평가받아 제29회 한국보도사진전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가운데)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가운데)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나를 17세 때로 돌아가게 해주오. 당신네 일본 사람들이 나의 청춘을 망쳐놓았소.

고 김학순 할머니

1997년 12월 16일 새벽 1시 40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힌 고 김학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파란 많은 삶을 마친 김학순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일본의 기만적인 국민기금을 절대 받지 말 것과 일본의 국가 차원 사과를 꼭 받아내 달라"였다.

당시 김학순 할머니는 서울 노원구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정부보조금만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병세가 악화되자 다니던 동대문감리교회에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1천7백만 원이 든 통장 등 전 재산 2천만 원을 기탁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읍 원당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고 김학순 강덕경 김순덕 문필기 박두리 등 5명의 할머니 흉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도 광주시 퇴촌읍 원당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고 김학순 강덕경 김순덕 문필기 박두리 등 5명의 할머니 흉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신대 문제협회의에 찾아와 자신의 한 맺힌 삶을 공개했다. 할머니는 설움에 복받친 눈물을 흘리면서 "정신대의 산 증인으로 당당하게 일본의 죄상을 밝히기 위해 나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신대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행'이라고 몸서리친 할머니는 '일본이 정신대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책임회피를 계속하면 증인으로 나서 재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한국 피해자를 비롯해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호주와 네덜란드의 피해자도 앞으로 나서게 됐다. 그 결과 1993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강제성 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이끌어 냈다. 일본군 위안부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2012년 김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한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해 활동을 펼쳤다. 2017년에는 정부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2018년 8월 15일 한국일보 사설. 전날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첫 정부기념식의 의미를 다뤘다.

2018년 8월 15일 한국일보 사설. 전날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첫 정부기념식의 의미를 다뤘다.


1994년 3월 18일 김학순 할머니가 고 전금화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영정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 3월 18일 김학순 할머니가 고 전금화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영정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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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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