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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서 초심을 되새기길

입력
2021.12.13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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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록
윤종록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21세기 당파싸움에 휘말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의 큰 어른, 다산의 눈으로 새로이 조명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200년 지나도 변함없는 파당정치
후보자 선택이 스트레스가 된 현실
국민을 위한 21세기 실학 준비해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 초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 초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1800년, 혈기왕성했던 48세의 정조대왕이 갑자기 승하하자 정순대비를 앞세워 기다렸다는 듯이 벽파들이 들고 일어나 무자비하게 시파들을 처단했다. 이유는 천주교인 서교를 퍼뜨려 혹세무민하고 있다는 누명이었다. 장차 영의정으로 내정될 예정이었던 다산이 최우선으로 지목되었으나 결국 증거를 못 찾아 강진으로 유배된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아 그를 옹호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잣대로 조정은 매일같이 상소문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산은 암행어사 시절, 경기도 관찰사 서용보의 비리를 파헤쳐 탄핵했는데 정조 사후 그가 영의정에 오르면서 비열한 복수의 칼날이 그를 18년이나 강진에 묶어 놓았다. 그 후 벽파는 오로지 파당정치에 혈안이 되었고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황구첨정, 백골징포가 백성들 입에서 회자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다산은 2서1표뿐만 아니라 유배지에서 눈으로 확인한 파당정치의 현실을 2,500수의 시로 남겼다.

다산이 200년을 흘러 내려와 지금의 대한민국에 나타난다면 우리 후손들을 어떻게 꾸짖을까? 기술과 문명의 진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작금의 정치 상황일 것이다. 매일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은 180도 다른 시각으로 단 한 치의 틈새도 없이 서로를 천박한 언어로 내리치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공학이다. 다만 시파·벽파가 좌·우라는 가면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1세기 세계 경제 10위권의 나라에서 만사가 서로 대립하며 단 한 곳도 절충점이 없는 대립구도로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정치만큼은 200년 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다는 점에서 다산은 실망했을 것이다.

탕평을 위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관에 침을 뱉었던 자들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어 젊고 참신한 열린 인재를 등용하여 개혁을 추구했으나 독살에 가까운 의문의 죽음은 백성의 정치가 아닌 파당정치로 급선회하게 했다. 그리고 딱 100년 후 일본에 또 한번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2차 세계대전에 연루되어 자력 독립이 아닌 결과로 남북이 동강 난 채 70년이 흘러버렸다.

다산은 당시 금서에 해당하는 사회개혁의 메시지를 책으로 엮어내면서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혹시 누군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신의 메시지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처연한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우리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대선 후보자들 거의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로 다산을 꼽았다. 그러나 교과서를 암기하고 점수를 얻기 위한 얄팍한 지식의 19세기 실학자 다산이 아니라 그분의 깊은 생각을 21세기의 것으로 치환한 '실학21'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기약 없는 처연한 환경에서 과거는 담대하게 잊고 오로지 다가오는 미래만을 바라보며 누가 읽을지 썩어 없어질지 모르지만 509권의 책을 묵묵히 써 내려간 큰 어른의 담대한 도전을 반추할 때다.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다. 주인인 국민이 받고 있는 선택의 스트레스를 헤아린다면 후보자들은 우선 몸과 마음을 세탁하는 의식부터 치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지도자의 생각을 가다듬는 리셋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만덕산 중턱의 다산 초당이 리셋하는 데 있어서 제격이다. 오른쪽에는 천 년 전 장보고가 바다너머를 꿈꾸며 출정했던 청해진이, 왼쪽에는 21세기 우주로 나가는 관문 나로도가 위치하고 있으며, 건너편 강진만에는 천 년 전 세계적인 으뜸 브랜드 상감청자 가마터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 년의 지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예를 갖추어 리셋 후 각자의 '임인경장'을 기대해보자.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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