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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살 수 있을까?" 세대주가 된 29세 오영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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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살 수 있을까?" 세대주가 된 29세 오영선 이야기

입력
2021.12.10 04:30
수정
2021.12.10 09:43
15면
0 0

최양선 장편소설 '세대주 오영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 상향 조치가 시행된 8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 상향 조치가 시행된 8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근 몇 년간 부동산이라는 화두는 다른 모든 이야기를 집어삼켰다. 정치·경제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 가치가 됐다. 2인 이상이 모이면 부동산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사회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이자 개인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니 문학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고 할 때, 그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 고민을 경유하게 된다. 최근 출간된 최양선 작가의 장편소설 ‘세대주 오영선’은 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부동산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동상이몽을 통해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새롭게 던진다.

주인공인 오영선은 중소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20대 후반 여성이다. 6개월 전 엄마가 사망하며 졸지에 동생과 둘이 사는 집의 세대주가 됐다. 엄마의 장롱에서 16년 전 만들어둔 청약통장을 발견했어도 집을 살 일이 없으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자기 아들이 들어와 살 것이라며 영선에게 집을 비워달라 통보해오며 혼란에 빠진다.

최양선 작가는 자신이 부동산 세계를 마주하며 생긴 질문에 대한 답을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찾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계절 제공

최양선 작가는 자신이 부동산 세계를 마주하며 생긴 질문에 대한 답을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찾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계절 제공


영선의 반대에는 회사 선배 주 대리가 있다. 강남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늘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주 대리는 부모님 조언에 따라 과천에 신혼집을 마련했고 또 다른 아파트 청약 점수를 높이기 위해 둘째 임신을 계획 중인 인물이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이 삶의 목표인 주 대리의 눈에 청약통장을 손에 쥔 영선이 들어오고, 주 대리는 영선을 모델 하우스로 데리고 다니며 부동산 세계로 이끈다.

소설은 “대출은 위험한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사는”지 알 수 없다던 영선이 “대출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라는 주 대리의 조언에 따라 부동산 세계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외에도 용인시에 아파트를 샀다 집값이 폭락하는 경험을 했던 단골 카페 사장,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죽어라 일했지만 끝내 빚만 갚다가 세상을 떠난 영선의 부모님, 강남 아파트를 분양받아 경제적 자유를 이룬 주 대리의 부모님 등 다양한 세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문제에서 선인과 악인은 나뉘지 않는다. 그저 각자 처한 상황이 있을 뿐이다. 오로지 부동산에 초점을 맞췄을 뿐인 소설이 이토록 다양한 이해관계를 다룰 수 있는 이유다.

'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사계절 발행. 208쪽. 1만2,000원

'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사계절 발행. 208쪽. 1만2,000원


소설은 영선이 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이사 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소설은 여기에서 한차례 매듭 지어지지만, 종래에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지 아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최종 결말은 영선이 구입한 아파트 시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선은 이사 간 아파트의 베란다에 기대 서서 부동산 시세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호갱노노 앱을 켠다. 3.5, 4.5, 5, 6.5 등으로 표시된 아파트 시세는 영선의 삶이 이제 그 숫자 안에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알려준다. 대출 이자를 갚으며 이어질 영선의 앞으로의 삶은 이제 아파트 시세에 따라 그 행불이 결정될 것이고, 영선이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웃게 될지 절망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설의 배경이 2017년임을 감안할 때, 그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는 독자인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다. 3~4년 사이에 집값은 믿기 힘들 만큼 가파르게 올랐다. 호갱노노 앱을 찾아보니 2017년 영선이 매수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분당 오리역 인근의 3억대 초반 소형 아파트는 2021년 12월 기준 7억 중반까지 뛰었다. 작가는 맨 뒤에 짧은 에필로그를 덧붙인다. 에필로그에서 영선은 이렇게 말한다. “샀을 때보다 두 배가 올랐어. 단기간에 이렇게 집값이 오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현실은 소설가의 상상력마저 가볍게 뛰어넘는다. 아찔한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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