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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규 강압훈련에 반발 조재범, 코치 되더니 폭력 대물림" [일그러진 스포츠]

입력
2021.12.21 11:00
수정
2022.01.27 17:2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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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인사 50% 복귀에 피해자 침묵
전명규, 한체대 빙상장 사유화 독점
"줄 잘 서면 개인강습 '월 수천' 벌어"
"특정 학교 독식… 폐쇄성 개선돼야"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왼쪽)와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연합뉴스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왼쪽)와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연합뉴스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자들을 안 때리니까 전명규 교수가 욕을 하더라고요.”(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A씨)

“전명규 교수 비호로 개인 강습을 했던 코치들은 매달 수천만 원을 벌기도 했어요."(전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코치 B씨)

빙상계 '악의 축'으로 평가받았던 한국체대 전 교수 전명규(58)씨가 파면당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악습은 여전히 빙상계를 떠돌고 있다. 전직 빙상선수들은 빙상계에 각종 사건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증언했다. 금메달에 모든 것을 걸고 전씨에게 강압적인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폭력 코치’로 변신했고, 그들은 전씨가 독점한 빙상경기장을 사용하며 사설 강습으로 돈을 벌었다. 문제를 일으키고 징계를 받아도 상당수는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재범 동료 증언 “피해자가 가해자로”

A씨는 전씨가 감독을 맡고 있던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2000년대 초반 은퇴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한 5, 6년 동안 지도자들 폭행에 집중적으로 노출됐다. A씨는 한국일보와 만나 감정적인 체벌을 상습적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 방으로 끌려가 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지금도 좁은 공간에 혼자 남게 되면 심적으로 힘들다”고 전했다.

A씨가 전씨 밑에서 훈련하던 시기에 조재범씨가 대표팀 선수로 합류했다. A씨가 기억하는 조씨는 여린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조재범) 선배는 내가 맞는 광경을 보고 ‘이럴 거면 나는 선수로 못하겠다’며 스스로 태릉선수촌을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훈련 방식을 강요했다. 2000년대 후반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도 맡았던 A씨는 당시 한체대 교수로 있던 전씨가 제자들을 안 때리는 자신을 나무라며 ‘애들을 짐승같이 부려라’며 욕설 섞인 지적을 수시로 했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반면 조씨는 전씨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2011년부터 7년간 심석희 선수 등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며 훈련시켰다. 선수 시절과는 달리 코치가 된 뒤부터는 폭력을 대물림한 것이다.

코치들이 전명규씨에게 줄을 선 이유는 또 있었다. 2010년쯤부터 2년 동안 한체대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대표팀 보조코치로 일했던 B씨는 “전씨가 빙상장 대관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전씨의 제자 출신 코치들은 학생들 수십 명을 거느리고 한체대에서 개인지도를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쇼트트랙 학생 10명 이상을 강습하면 한 달에 1,000만 원 넘게 버는데, 조씨가 한체대에서 강습한 학생이 4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며 “전씨 비호를 받은 코치들은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불렸다”고 전했다.

전씨가 한체대 빙상장을 사유화한 행태는 2019년 2월 실시된 교육부 종합감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악습 안 끝나… 피해자에 침묵 강요”

그렇다면 빙상계는 전명규의 그늘에서 벗어났을까. 안타깝게도 대다수 빙상인들은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스포츠인권연구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정용철 서강대 교수는 “선수 폭행 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퇴출됐던 빙상 선수와 지도자들이 6개월~1년 뒤 현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14~2020년 각종 비리로 징계받은 체육인 1,171명 가운데 31%(372명)가 복직하거나 재취업했다. 빙상 종목에선 78명 중 39명이 현장으로 돌아와, '복귀율'이 50%에 달했다.

징계받은 인사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귀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가해자들이 복귀하는 모습을 지켜본 피해자들은 허탈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를 더욱 침묵하도록 강요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 전후로 정비를 하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 전후로 정비를 하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현장으로 돌아오는 감독·코치들이나 남아 있는 지도자들 모두 ‘한식구’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문제다. 특정 학교 출신이 독식하는 빙상계의 폐쇄적 구조 때문이다. 김대희 부경대 교수는 “한체대 출신에게만 지원을 밀어주는 빙상계의 고질적 병폐는 여전하다”면서 “다른 대학과 지역의 빙상 인프라를 키워서 경쟁자들이 나오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도자가 제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는 구시대적 훈련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빙상 종목에선 개인 지도가 일반화돼 있어 지도자의 과잉 개입과 감시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지도자는 훈련에만 관여하고, 선수 생활은 별도 관리자에게 맡기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랙티브] 전국 '징계 체육인' 1,187명 현황공개

페이지링크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athletics_disc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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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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