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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악용하는 사람들

입력
2021.12.09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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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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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다. 체육시민사회장관이 겸직하도록 했지만 '외로움'을,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조 콕스 고독위원회'(The Jo Cox Loneliness Commission)가 2017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고용주, 공동체, 동료시민, 정부로부터의 관심과 지지에서 배제됨으로써 오는 고립감임을 밝힌다. 이러한 '외로움'은 '전 세계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추겨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토양이 되면서, 정신건강을 넘어 정치적·경제적 배제와 단절이라는 실존적 의제가 된다. 미국의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테네시주 동부 탄광 철도 노동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선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급락함과 동시에 찾아온 그들의 주변화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 즉 외로움과 고립 때문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로 그 화살을 향하게 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

나치가 그랬듯 전 세계적으로 우파 포퓰리즘은 사람들이 배제되고 주변화된 느낌을 더욱 부채질해 타자에 대한 존중보다는 혐오를 부추긴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양성평등을 통해 남녀 모두의 인간 해방을 이루어나가는 운동으로보다는, 힘없고 외로운 청년들을 자극하는 분열의 포인트가 되어버린 과정에, 이를 자극해온 정치세력이 있다. '외로움'이 우리 사회의 위기와 맞닿아 있는 이유는, 이 시대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호소하는, 배제되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대해 정치적 악용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분열을 끊임없이 조장하면서 정작 이들의 '존엄한 삶'에 대한 해결 방안은 뒷전으로 밀린다.

덴마크의 '함께 자전거 타기'(Cycling Without Age)는 자원봉사 라이더와 요양원 노인들이 함께 도시를 달리며 세대 간 연결로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결하는 사회혁신 모델이다. 충남 홍성 홍동면에서는 그물코출판사, 느티나무헌책방, 사진관 등 수십 개의 협동조합이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 간다. 서울 성산동의 성미산 마을, 도봉동의 은혜 공동체는 공동주거를 통해 공동육아와 돌봄, 마을기업과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며, 주거, 출산, 육아, 교육 등을 함께 도와가며 살아간다. 시민들은 이미 마을과 공동체에서 이 시대를 외롭지 않게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다.

정치의 계절, 정치인들이 자신을 바라봐 달라고 한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치는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누군가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 따뜻함과 돌봄이 있는 정치이다. 노동과정에서, 교육에서, 공동체와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들이 관심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정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또한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소통하고 서로를 포용할 공간과 프로그램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정한 지역, 소수의 사람들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이 살아나고, 공동체가 다시 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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