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장관 내정자 각각 8명씩 임명
국가안보·외교 등 요직은 여성 차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자인 올라프 숄츠 차기 총리가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킨다. 단순히 숫자만 같은 게 아니다. 국가 안보나 외교 등 주요 부처 장관직을 모조리 여성이 맡도록 했다. 16년에 걸친 여성 총리 시절에도 ‘희망사항’에 그쳤던 일을 남성 총리가 현실화하면서 비로소 ‘성평등 내각’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사회민주당 소속인 숄츠 차기 총리는 이날 여성 8명·남성 8명으로 구성된 새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독일 첫 여성 외무장관에는 지난 9월 총선에서 ‘녹색당 돌풍’을 이끌었고, 이번 연립정부 구성 협상에서도 핵심 인물로 부상했던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대표가 내정됐다. 낸시 페이저 사민당 헤센주(州) 지부장도 ‘여성 내무장관 1호’로 확정됐다. 국방장관에는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현 법무장관이 오르게 됐다. 독일 역사상 세 번째 여성 국방장관이다.
이와 함께 △건설주택부 △개발부 △가족부 △소비자부 △교육연구부 등도 모두 여성 장관이 이끌게 됐다. 숄츠 차기 총리는 새 내각 인선 발표 후 “남녀가 각각 독일 인구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여성도 절반의 힘을 얻어야 한다”며 “나는 우리가 이것(남녀 동수 내각)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독일 내각이 남녀 동수로 꾸려진 건 사상 처음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이었던 메르켈 총리가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일을 ‘남성 후임자’가 해냈다”고 짚었다. 메르켈 총리가 젠더 이슈와 관련, 복잡하게 뒤얽힌 유산을 숄츠 차기 총리에게 남긴 꼴이라는 뜻이다.
실제 메르켈 총리 본인은 여성이었음에도, 집권 마지막까지 내각과 의회 내 여성 비율은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여권(女權)을 거의 언급하지도 않았다. “메르켈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7년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얼버무린 탓에 여성계와 진보 성향 인사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퇴임 및 정계 은퇴를 코앞에 둔 올해 9월에야 “나는 페미니스트다.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언급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도우파 성향 여당(기독민주당)을 이끄는 입장에서 남성 중심 정치권과 지지 세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젠더 이슈 관련 발언을 꺼려 왔고, 퇴임을 목전에 두고서야 ‘본심’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 최대 독립연구기관인 베를린사회과학센터(WZB)의 유타 올멘딩거 대표는 “메르켈은 늘 비밀리에 젠더 정치를 했으나, 그가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지 않은 건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숄츠 차기 총리는 8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메르켈 총리의 후임으로 정식 선출된다. 장관 내정자들도 이날 취임 선서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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