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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제도, 지금 이대로가 최선일까

입력
2021.12.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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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D.P.'. 넷플릭스 제공

얼마 전 TV드라마 ‘D.P.’가 인기를 끌면서 오랜만에 지인들과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오래전 일이어서 거의 잊고 지냈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란 사실에 조금 놀랐다. 강산이 몇 번은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도 누군가는 여전히 군에 입대하는 악몽을 꾼다고 했고, 누군가는 당시 겪었던 폭력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 했지만 최근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진 않은 듯했다.

군대 폭력이라고 하면 'D.P.'에 나온 것처럼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 폭력을 주로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을 보며 군사주의라는 이름의 폭력이 얼마나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18년 역사를 담담하게 기록한 영화인데 얼핏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작품이 묻는 질문은 보다 근본적이다. 군사주의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군사주의와 부딪히는 평화주의까지 우리 사회가 자유롭게 허용하진 않는 듯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군대가 아닌 민간 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병역법이 바뀌었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판사와 검사에게 ‘양심’을 심판받아야 하고 이를 통과하더라도 현역의 2배에 달하는 기간을 교도소에서 합숙 근무해야 한다. 사실상 교도소에 가두는 군사주의적 징벌인 셈이다.

병역 의무는 남성 청년 세대의 끊임없는 고민거리이고 성차별의 발단이다. 그래서인지 대선 시즌에 접어들며 잠시 모병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는 목적이 큰 이런 논의는 오래가지 않는다. 적정 군 병력에 대한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군부 독재 시절의 군사주의적 시스템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모병제 도입 주장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상의 효율로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군 체계를 만들고 징집 대상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면 모병제로 바꾼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쟁 양상의 변화와 첨단무기 비중의 증가에 따라 군 병력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맞을지, 일반 보병과 전문 병력의 비중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육해공군 전력을 어떻게 조정할지, 먼저 논의해야 할 텐데 외부의 변화에 비해 우리 군의 움직임은 너무 느린 듯하다. 상비 병력 축소, 전문 병력 강화, 의무복무 기간 단축, 여군 비율 확대 등 다양한 외부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국위 선양’이라는 구시대적인 개념의 병역특례 제도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콩쿠르 우승자만큼이나 미국 빌보드 1위 가수, 게임대회 우승자도 국가의 소프트파워에 기여하는 시대에 공정한 정책이 어렵다면 아예 병역 특례를 폐지하는 방안은 어떨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하도록 할 수도 있겠다.

방탄소년단도, 김제덕도, 조성진도 기꺼이 다녀올 수 있는 군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은 아닐지라도 애써 피하고 싶진 않은 군대, 대체복무 대신 입대하는 게 억울하지 않은 군대, 징집 방식부터 운영 방식까지 폭력적이지 않은 군대.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좀 더 깊이 고민한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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