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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말은 잘 들었다

입력
2021.12.1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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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7일 전남 강진군에 위치한 안풍 마을회관에서 거주 농업인들과 국민 반상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7일 전남 강진군에 위치한 안풍 마을회관에서 거주 농업인들과 국민 반상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정부 때리기'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매를 주로 맞는 정부 부처는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다.

코로나로 촉발된 심각한 경제 위기에도 나라 곳간을 제대로 풀지 않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여당 후보가 되기 전부터 '얼빠진'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기재부를 비난해왔는데, 대통령 후보가 된 후에도 "죽어도 안 잡힌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등의 표현으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예산권을 빼앗겠다는 등 해체 수준의 기재부 개혁도 예고하고 있다.

기재부뿐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집값 상승의 책임을 물어 국토교통부도 매섭게 꾸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으로 돈 못 벌게 하라고 지시했는데, 국토부 공무원들이 이를 잘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는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질의에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을 해준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국토부 노동조합은 이를 듣고 이례적으로 여당 대선 후보를 향해 비판 성명을 냈다.

정치학자들은 현 정부 실정에 정권 교체 여론이 높자 여당 후보가 전임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는 행보로 보고 있다. 사실 여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두 해 봐온 풍경이 아니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여당 대선 후보와 현직 대통령이 충돌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선 후보와 노태우 대통령의 갈등이다. 노 대통령은 결국 임기 말 당을 떠났다. 5년 뒤 김영삼 대통령도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 후보와 갈등 끝에 당에 탈당계를 내는 처지에 몰렸다. 대선 후보와 대통령의 직접적 갈등은 없었으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당을 떠났으며, 그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역시 비슷한 이유로 모두 당적을 내려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당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정권 교체 여론도 높지만 국정 지지율 역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후보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지만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역시 만만치 않다. 현 정권과 차별화를 꾀하긴 하되,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 정권의 실정을 언급하면서 '당정청'이라는 한몸에서 굳이 정부만 골라내 비판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이 후보가 비판하는 부족한 소상공인 지원이, 유례없는 집값 폭등이 정말 기재부와 국토부 등 공무원들만의 잘못일까. 공무원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빼놓고 공무원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재부를 이끌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의 별명은 '홍백기', '홍두사미'다. 정부 정책이 당청의 입김에 번번이 휘둘리자 언론에서 비판 조로 붙인 별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청와대와 여당 말 잘 안 들었다고, 그것도 여당 후보의 비판을 듣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들, 그동안 말만은 정말 잘 듣지 않았던가.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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