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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반도체 동맹을 상상하라

입력
2021.12.02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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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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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술의 토대가 된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의 출현은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및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무기 개발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1947년 미국 벨랩에서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2차대전 직후부터 진행된 학제적 연구개발의 결과였다. 트랜지스터의 발명 자체는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졌지만, 이는 미국 과학연구개발국(OSRD)을 중심으로 전시의 군산학을 아우르는 연구인력들 간의 광범위한 네트워크 유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관심을 가졌던 군의 직접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던 성과였다. 1970년대 이후 반도체 수요와 기술 개발이 민간기업 주도로 진행되는 한편, 미국 기업의 해외진출로 일본 한국 대만 중국 기업들이 그물망처럼 얽힌 글로벌 반도체 생산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진화되어 왔다.

최근 미중 반도체 갈등과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로 인해 반도체 생산네트워크가 공급망 안전성 관점에서 접근되면서 반도체가 다시 안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019년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으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하면서 한국 반도체산업 공급망에 혼란이 야기된 경험이 있었다. 이후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위한 노력을 진행해 왔다. 국산화 전략은 의미가 있지만 모든 것을 국산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계가 명백하다. 미국 반도체협회 보고서는 미국이 반도체 공정 국산화를 시도하는 경우 35~65%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부문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최첨단 공정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대만 TSMC, 한국 삼성의 미국 투자를 이끌어냈고, 인텔과 마이크론의 미국 내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 정책을 새로 마련하는 한편, 대만 TSMC 공정 시설의 일본 내 건설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에 제조시설 건설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되었다. 대만은 이제까지 첨단 반도체 공정 시설을 주로 대만 내에 건설하던 방향을 바꾸어 미국 일본 등 해외에 공정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대만 반도체 기업 간의 교차 협력이 눈에 띄는 가운데, 한국에도 일본 미국의 반도체 장비 기업의 투자가 진행 중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판 반도체 동맹이 가시화되고 각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판 반도체 동맹은 어떻게 짜야 하는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미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주요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자였지만 동시에 오랜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2019년의 외교적 마찰로 양국 협력이 약화되어 왔으나 미중 기술경쟁시대가 부과하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협력 채널을 복원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대만 중소 기업들과의 협력 역시 중요하다. 즉 한국판 반도체 동맹은 미중 양자 사이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중층적으로 다양한 협력 채널을 넓게 확보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한국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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