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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경력보유여성' 재취업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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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경력보유여성' 재취업 돕는다

입력
2021.12.03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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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커넥트' 김미진 대표 [인터뷰]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는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은 경력 공백 이전의 기존 경력과 잠재력을 지워버린다"며 "'경력 단절'이 아닌 '경력 보유'로 말을 바꾸면 관점이 바뀌고, 행동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는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은 경력 공백 이전의 기존 경력과 잠재력을 지워버린다"며 "'경력 단절'이 아닌 '경력 보유'로 말을 바꾸면 관점이 바뀌고, 행동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3년 전 화제가 됐던 피로해소제 광고의 카피처럼, 많은 여성이 경험하는 육아라는 고된 돌봄노동은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원든 원치 않든 경력의 '단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경력 공백기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최근 활발히 인다. '경력 단절' 여성 대신 '경력 보유' 여성으로 바꿔 부르면서다. "일을 쉰 공백기에 어떤 역량이 키워졌고,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됐는지를 보자, 그러려면 언어부터 바꿔야겠다 싶었죠. 어떤 시간이든 결국 어떻게 해석해 내 씨앗으로 삼느냐 문제니까요."

2018년 일찌감치 경단녀를 '경력 보유 여성'으로 호명하고, 이들의 재취업을 돕는 채용 플랫폼 위커넥트를 세운 김미진(35) 대표의 말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만난 김 대표는 "경력 '단절'에만 집중하면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 공백 이전의 기존 경력과 전문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경력 보유 여성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헤드헌팅·리크루팅을 대행하는 위커넥트는 이들 여성과 기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언어를 바꿔 관점을 바꾸고, 결국 채용 시장의 실질적인 변화까지 만들어 내겠다는 취지다.

지난 8월 서울 성동구가 제정한 이른바 '경력 보유 여성 조례'도 연장선상이다. 경력 보유 여성(일 경험, 돌봄노동 경험 등을 보유하면서 경제활동을 중단한 여성)으로 용어를 바꾸고, 육아 경험도 일 경험으로 인정하는 게 주된 내용. "경력 보유 여성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게 아니라 기업의 관점을 바꾸려는 목적이 더 크죠." 경력 보유 여성이라는 말이 일 경험의 공백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를 희석하고, 개인의 자존감만 고취하고 말아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문제시할 때는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야기하고, 그들을 호칭할 때는 경력 보유 여성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도 강조했다.


김미진 대표는 위커넥트를 국내 최대 경력직 여성 풀을 가진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홍인기 기자

김미진 대표는 위커넥트를 국내 최대 경력직 여성 풀을 가진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홍인기 기자

위커넥트는 소셜벤처 '위즈돔'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30대 초반 당시 김 대표의 문제의식에서부터 비롯했다. "어떤 자리에 가도 남자들뿐이고, 여성 리더가 너무 적은 거예요.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일을 멈추고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는 걸 그때 보게 된 거죠."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이라는 고민은 위커넥트로 이어졌다. 창업자들과의 만남이 잦았던 그에게 창업은 그저 경력을 잇는 한 수단일 뿐 걸림돌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위커넥트에는 현재 그를 포함한 6명이 일하고 있다. 5명은 공교롭게 모두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이다. "생물학적 남성이 있다고 젠더 다양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고 보고요. 다들 여성 채용을 꺼리는데 우리라도 더 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이 중 주 25시간, 30시간을 일하거나 대전과 세종에 거주하는 직원도 있다. 매주 월요일만 서울의 사무실에서 다 같이 근무하고 나머지는 원격 근무를 한다. 코로나19가 도래하기 전부터 그랬다.

김 대표는 "생애주기 변화에 따라 현재 상황에 가장 최적화된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고, 그렇게 일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일과 삶은 서로를 강화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여성'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만이 아닌 생산의 주체로 경제활동을 해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어도 상관없고, 그게 꼭 취업이 아닐 수도 있겠죠."

김 대표는 위커넥트를 국내 최대 경력직 여성 풀을 가진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그래서 더 많은 회사들이 경력직 여성을 채용하기 위해 위커넥트를 찾게 되길 바란다.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는 2025년이면 하고 싶은 일도 구상해뒀다. 여학생들의 이공 계열 진출을 돕는 '소녀들을 위한 과학 실험실'이다. "앞으로 세상은 결국 기술이 변화를 가장 먼저 이끌 텐데 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한쪽 성별만 하게 둘 순 없으니까요. 지금까진 정치·경제 분야에 여성이 많이 진출해야 된다고 얘기했지만 이젠 기술과 공학 분야에도 여성이 많아져야 해요. 물론 위커넥트부터 잘 돼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하하"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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