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2월의 첫째 날이다.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고, 겨울 분위기가 나는 음악들의 수요가 높아진다. 겨울은 음악가들에게도 특별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얀 눈과 겨울이 주는 스산한 분위기는 작품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겨울 한가운데 놓인 크리스마스의 따뜻함도 이들에겐 더욱 특별하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은 음악가들에 의해 음표가 되고 음악이 되었다.
그중 차이코프스키는 특히 겨울과 관련한 음악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첫 번째 교향곡부터 겨울 음악이다. 부제는 '겨울날의 백일몽'. 작곡가는 겨울 한가운데에 놓여, 겨울에 대한 인상을 그린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몽환적이기도 하고 겨울 특유의 황폐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러시아 민요 선율은 우리들을 러시아 한복판으로 데려다 준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첫 번째 교향곡에 도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열정도 작품 곳곳에서 감지된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1번은 겨울 문턱에서 금방 만날 수 있다. 2일과 3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 날 공연의 지휘를 맡은 지중배 지휘자는 "작품이 남긴 부제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전한다. 덧붙여 지중배 지휘자는 직접 겪었던 경험이나, 책이나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겪었던 경험들로 저마다의 동화를 만들어 볼 것을 추천했다. 누군가에게는 추운 겨울 속 따뜻한 커피 한 잔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우산에 떨어지는 눈소리, 여행 중 만난 오로라일 수 있다. 첫 악장의 표제인 '겨울 여행의 꿈들'처럼 작품은 누구에게나 환상을 품게 만든다.
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겨울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은 발레 '호두까기인형'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더불어 연말을 장식하는 양대산맥 레퍼토리다. 크리스마스날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무대 연출에 눈이 즐겁다. 하얀 눈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하고, 요정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익숙하고 달콤한 선율이 고막을 단번에 잡아끌어 귀도 즐겁다. 한편의 겨울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두까기인형'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인기가 많다.
차이코프스키는 오로지 피아노를 위한 겨울 작품도 남겼다. 바로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2월'이다. 차이코프스키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작품 '사계'를 작곡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12개로 구성된 이 작품은 계절마다의 감흥과 인상을 그리고 있다. 3월에 붙은 부제는 '종달새의 노래', 8월은 '추수' 그리고 12월은 '크리스마스'다.
'12월'은 부제 그대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다룬다. 추운 계절이지만 따뜻한 불빛들이 보이고, 사람들은 모여서 춤을 춘다. 매달이 3, 4분 정도의 길이로 작곡되었다. 일 년 열두 달은 40분의 시간으로 축약된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마지막 '12월'을 들을 때쯤엔 일 년이 고작 12달뿐이라는 사실이 아쉽게도 느껴진다.
이 밖에도 지구의 겨울을 담은 작품은 정말 많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남긴 춤곡 '썰매타기'가 있고, 슈베르트 불멸의 명작 '겨울나그네' 도 겨울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아주 먼 미래에 지구에 겨울이 사라진다 해도 이 음악들은 지구에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타임캡슐처럼 먼 미래의 인류에게 겨울이 어떤 계절이었고,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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