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정원의 선구자 피트 아우돌프
아시아 첫 작업지로 울산 택해…"시민 열정에 감동"
"도시재생·지속가능성 위해 한국엔 공공정원 필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늘면서 정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원이 많다고 해서 '친환경·자연적'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관리가 잘 안 되면 식물이 뒤죽박죽 자라 처치 곤란한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정원·조경업계에선 그 대안으로 '자연주의 정원'이 떠올랐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화려함에 치중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자연 생태계와 가장 가깝게 구성하는 방식이다. 시대의 트렌드인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식물의 모든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생명력이 강하고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는 여러해살이풀(겨울에 땅 윗부분이 죽어도 이듬해 봄 새싹이 돋아 여러 해 살아가는 풀) 위주로 심는다.
자연주의 정원의 유행을 이끈 네덜란드 출신의 피트 아우돌프(76)를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의 훔멜로(Hummelo)에서 만났다.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125㎞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우돌프의 자택과 농장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농장은 아우돌프가 디자인한 정원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 파크', '시카고 루리 가든', 영국의 '하우저앤드워스' 모두 아우돌프의 손에서 탄생한 세계적 명소다. 그는 자신의 식물 실험실인 이곳을 보여주며 "따로 관리하지 않아요. 저절로 자라게 두는 데 이렇게 잘 자랍니다"라고 설명했다.
'저절로 잘 자란다'는 그의 표현에 맞게 관광지보다 숲속 쉼터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보통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가지런히 줄을 맞춰 심은 것이 아니라 언뜻 봐서는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원을 빼곡히 채운 여러해살이풀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뤘다. 최근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한 '핑크뮬리(여러해살이풀의 한 종류) 밭'이 떠올랐는데, 색만 강조해 인위적으로 꾸민 게 아니다. 각종 식물이 한 데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한국인들, 울산 태화강서 역동적인 정원 즐기길"
우리나라에서도 곧 아우돌프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국가원 일원 1만8,000㎡ 규모의 땅에 자신의 브랜드인 '다섯 계절의 정원'을 디자인하고 있다. 아우돌프의 아시아 첫 번째 정원이다. 올해 가을 꽃 축제에 맞춰 공개할 예정이다.
아우돌프는 울산팀과 왕래하며 설계 마무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울산의 날씨·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인지 살피고자 직접 울산을 찾았다. 지난달 중순에는 울산시 직원들이 훔멜로를 찾아 작업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아우돌프가 여러 도시의 숱한 러브콜에도 아시아의 첫 번째 작업 도시로 울산을 택한 건 '도시재생'과 '공공성'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한국인들이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역동적으로 바뀌는 여러해살이풀을 즐기고, 자연 속에서 많은 걸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죽음의 강이었던 태화강의 부활 역사도 한몫했다. 공장 폐수로 몸살을 앓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1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우돌프는 "울산은 공업도시로 황폐화된 환경을 시민들의 힘으로 복원시킬 만큼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라며 "정원은 도시에 생명력과 자연의 감성을 불어넣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우돌프는 태화강 국가정원을 도심 속 공공정원의 상징인 뉴욕 하이라인 파크 못지않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하이라인 파크는 2009년 개장 이후 연간 800만 명이 찾는 뉴욕의 대표 관광 명소다. 그는 "한국의 주거 환경은 좁고 사람이 많은 곳에 모여 살기 때문에 개인정원보다 공공정원이 필요하다"며 "하이라인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자연과 식물을 즐기고 가는 것처럼, 태화강 국가정원이 한국인들의 자연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측은 아우돌프의 이번 작업을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가 지속가능성에 대해 교류하는 장이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네덜란드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작업은 아우돌프가 설계한 아시아권 최초의 정원으로, 아직은 생소한 자연주의 정원을 한국에 소개해 기쁘다"며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