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학·과학·철학적 성찰 담은 책 봇물
피부과 전문의·미술사가·장례지도사 등 다양한 필자
온라인 서점서 관련 도서 3년 연속 판매 증가
"나는 죽음의 과정을 손에 잡힐 듯이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낱낱이." 지난달 22일 출간된 '죽음을 그리다'(시공사 발행)의 저자인 이연식 미술사가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책은 그림과 조각 등 예술에 나타난 죽음의 여러 모습을 다룬다. 이경주 편집자는 "추상적 주제인 죽음을 구체적 미술 작품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죽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마주하는 힘을 갖자는 취지로 기획한 책"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안타레스 발행)는 지난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큰 역할을 한 윤영호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의 신간이다.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라"고 역설해 온 그의 32년간의 통찰을 집약한 책이다. 윤 이사장은 서문에서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삶을 생각하게 된다"며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함께하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나란히 출간된 두 책은 출판계에 최근 쏟아지고 있는 '죽음'을 소재로 한 다양한 책 중 일부다. 통상 계절적으로 여름보다는 겨울에 죽음을 다룬 책 출간이 늘긴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예기치 못한 죽음이 일상으로 들어온 가운데 올해는 유독 여러 배경의 필자가 참여한 관련 도서가 눈에 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쌤앤파커스 발행)는 피부과 전문의인 백승철 가톨릭대 의대 외래교수가 썼다. 그가 투고한 원고를 토대로 출간된 책은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 나타나는 의학적 현상과 장례 문화, 말기 환자의 치료 선택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까지 죽음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김선도 편집자는 "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면서 젊은 독자도 죽음이 병들고 나이든 사람에게만 가까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며 "관련 서적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이에 대한 독자의 수용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2012년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발행)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주목받게 된 '죽음' 관련 책은 특히 최근 3, 4년간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죽음을 주제로 한 도서는 3년 연속 판매가 늘었다. 장례지도사 등 죽음과 관계 있는 저자의 저작물이나 죽음을 의학·철학·과학적 시각에서 풀어낸 책 등 '죽음'을 테마로 한 책은 올 한 해 40종 가까이 출간됐다. 특히 30~40대가 관련 도서에 큰 지지를 보냈다. 11월까지 죽음을 다룬 책 구입 독자는 40대가 35%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1.8%로 뒤를 이었다.
국내 저서뿐 아니라 죽음을 다룬 번역서도 다수 출간됐다.
지난달 15일 출간된 '죽은 자가 말할 때'는 독일 법의학자인 저자가 지난 15년간의 활동 중 가장 비극적이었던 12가지 죽음의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또 10월 초 출간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영국 호스피스 의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환자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다. 이여경 편집자는 "매일 사망자 수가 집계되고 점점 개개인보다 수치 그 자체로서 의미가 커져 가는 이례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죽음 앞에서 인간성 상실을 극도로 경계한 이 책이 현 상황에서 죽음에 무뎌지지 않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봤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죽음은 삶을 가르쳐 주는 수단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죽음 테마 책은 최근 노년을 다룬 책이 각광받는 출판계 흐름의 한 줄기로 볼 수 있다"며 "30~40대 독자를 중심으로 노년과 죽음을 다룬 책이 삶의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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