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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유바리?… 교토시 '파산 경고'는 남의 일 아니다

입력
2021.11.30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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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줄어드는데, 무책임한 사업 남발
인구구조 변화에 발맞춰 선제 대응 필요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교토 고사찰 '기요미즈데라' 전경. 한국일보 자료 사진

교토 고사찰 '기요미즈데라' 전경. 한국일보 자료 사진


<29> 지자체 파산위험 ‘인구가 경고한 불편한 미래’

천년고도 일본 교토(京都)에 파산 경고등이 켜졌다. 교토시장은 이대로면 교토시 재정이 10년 내 파산한다는 우려의 메시지를 내놨다. 한때 연간 5,000만 인파를 끌어당긴 관광명소의 파산예고는 외신 토픽으로 한국에도 전해졌다.

열도의 체감충격은 상당했다. 지역소멸이 심화된 농산어촌도 아닌 유명도시 교토가 파산위기에 처했다니 그럴 만도 했다. 교토시보다 크기가 작은 지자체의 연쇄공포도 상당했다. 특히 파산한 도시의 이후 모습을 생생히 목격한 일본이라 그 후폭풍은 더 컸다. 2006년 파산지자체 제1호의 불명예를 떠안은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시가 대표적인 예다.

유바리시는 방만경영·분식회계·투자실패가 뒤섞여 인재(人災)가 빚은 지역파탄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현재는 세금은 제일 높지만, 서비스는 가장 낙후된 도시로 전락했다. 거주민이 1명도 없는 유령마을도 20곳에 달한다. 교토든 유바리든 위기흐름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급격한 시대변화와 소홀한 대응체계는 동일경로다. 즉 파산위기의 겉(재정 악화)과 속(인구변화)은 놀랍도록 똑같다.

인구악재가 불붙인 명문교토의 파산위기

회사부도는 일상적이다. 못 벌면 망하는 게 수순이다. 국가도 그렇다. 파산선언(디폴트)·채무조정(모라토리엄)처럼 망조를 경험한 나라가 적잖다. 반면 기초지자체처럼 행정조직의 파산뉴스는 낯설다.

교토위기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다만 찾아보면 사례는 많다. 금융위기 후 2011년 미국에서만 앨라배마 제퍼슨카운티를 비롯해 4곳이 파산신청을 했다. 2013년 디트로이트도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한국도 지불유예 선언사례가 있다. 2010년 성남시 등 3개 지자체가 그랬다. ‘세수감소→부채행정→변제불능’이 공통루트다. 원류에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방만한 재정운영이 있었다. 교토파산도 현실화된다면 닮은 전철(前轍)이다.

출발은 재정적자다. 교토의 경우 실질부채만 8,500억 엔에 달한다. 2021년부터 5년간 2,800억 엔의 재원부족이 예상된다. 어려울 때 끌어쓰려고 만든 공채상환기금도 곧 바닥신세다. 파산예고는 긴축경영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대로 놔둘 수 없으니 개혁에 동의해달라는 메시지다. 특단대책도 발표됐다. 공무원 급여를 최대 6% 깎고, 숫자도 550명 줄일 계획이다. 70세부터 적용되는 경로승차권도 75세로 축소했다. 보육료 지원(연 60억 엔)은 축소돼 본인부담으로 넘어간다. 최고수준의 복지서비스로 유명하던 교토로서는 구겨진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나마 놔두면 미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파산구조는 복합적이다. 직격탄은 어긋난 수요예측에도 밀어붙인 거액의 공공건설에서 비롯된다. 빚으로 지었는데, 채무변제는커녕 운영과정의 만성적자까지 얹어진 시영지하철이 대표적이다. 승객감소를 무시한 탁상행정이 만든 전형적인 토건실패 사례다. 팬데믹으로 관광경제가 붕괴된 것도 한몫했다.

단 파산본질은 인구변화에 있다. ‘인구감소↔재정악화’의 악순환이다. 구체적으로는 ‘출산 감소→고령 심화→활력 저하→경기침체→세수 감소→복지압박→인구유출'로 연결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과도한 복지지출을 감내하지 못하는 역내 경제의 세수붕괴가 컸다. 세수근간인 고정자산세(재산세)·주민세가 저성장·인구병으로 급감했음에도 불구, 과도한 출산장려·노년복지비는 유지됐다. 상황변화를 방관하며 속 편한 인기정책을 지속한 게 곳간바닥으로 직결됐다. 무책임정치의 복지부동과 무대응행정의 포퓰리즘이 파산경고라는 값비싼 대가를 낳았다.

그러나 인구구조는 되돌리기 힘들다. 2020년 교토인구는 8,982명 줄었다. 인구감소·사회전출 전국 1위다. 후속청년의 정주 포기도 많다. 관광유치용 과잉투자가 빚어낸 주택가격 급등 탓이다. 매년 1,000명 넘는 사회 감소(전출-전입)의 주력그룹이 2030대 청년인구다. 교토 탈출이다. 교토시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평가는 냉혹하다. 재건보다 연명적 미봉책이란 분석이 많다.


유바리가 알려준 파산도시의 핍박환경

파산도시의 삶은 처참하다. 교토가 긴장하는 건 유바리의 살벌한 선행사례 때문이다. 사람이 살기 힘든 거주불능의 상황악화가 펼쳐질 수도 있다. 유바리의 오늘이 교토의 미래란 점에서 위기감은 높다.

유바리의 파산선언은 총체적인 판단 미스가 빚어냈다. 1980년대 시작된 ‘탄광에서 관광으로’의 발전전략이 352억 엔의 누적 부채로 되돌아왔다. 세수(8억 엔)를 감안하면 어불성설의 빚덩이다. 사양화된 탄광경제를 관광사업으로 전환하는 차원이었으나, 문제는 진행과정에 있었다. 엇나간 수요예측, 방만한 부실행정, 멈춰선 감시기능이 총체적 부실을 낳았다. 빚을 빚으로 막고, 분식까지 횡행하며 눈과 귀를 닫은 결과였다. ‘부채자금→과잉투자→매출 감소→채산 악화→세수 하락→유지불능→신규부채’의 악순환이다. 행정리더의 조급함과 전시사업의 달콤함이 파산의 벼랑끝까지 내몰았다.

제 돈이었으면 못 할 부실살림을 행정은 곪아터질 때까지 속여가며 반복했다. 자치권을 잃은 유바리의 재건계획은 세금 인상·수혜 감소로 되돌아왔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재건계획이 아닌 파괴공작으로 불릴 정도다. 재건을 위한 최소 자원마저 줄인 탓이다. 파산 당시 12만의 주민은 7,120명(2021년 10월 31일)까지 줄었다. 도시는 완전히 멈춰섰다.

유바리는 지역소멸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밥벌이는 멈춰섰고, 인기척은 사라졌다. “목숨과 관련된 지출 빼고는 없앤다"는 게 유바리시의 입장이었다. 260명이던 시직원은 100명까지 줄였다. 현재는 꽤 정상화했으나 연봉도 40%씩 잘랐다. 시의원도 18명에서 9명으로 감축했다. 2017년 시장연봉(251만 엔)은 일본 최저를 찍었다. 퇴직금·교재비도 모두 없앴다. 대신 세금은 높였다. 잔류주민이 빚잔치의 희생양이 됐다. 주민·재산세 모두 인상됐다. 경자동차세(7,200엔→1만800엔), 하수도사용료(1,470엔→2,440엔)도 높였다. 공공시설은 폐쇄됐다. 초등학교는 6개에서 1개로 통합됐다. 공공의료인 시립진료소 병상도 줄였다(171개→19개). CT·MRI 등 장비는 없앴다. 외과·안과 등 진료과목은 사라졌다. 사실상의 병원폐쇄이다. 세금은 일등인데 서비스는 꼴찌라는 이미지마저 생겨났다.

'웃픈' 성과도 있다. 높아질 걸로 본 사망률이 줄어든 것이다. 아파 본들 의료서비스를 못 받으니 선제적으로 예방의료에 나선 결과다. 궁하면 통한 아이러니다. 서로돌봄으로 불리는 주민조직의 네트워크는 강화됐다. 한국에서도 받아들인 마을단위 예방·재택의료를 뜻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의 성과사례로 인용된다.


한국지자체는 파산선언에서 자유로운가?


유바리의 경험은 참혹하고 안타깝다. 우리도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다. 인구 감소·경제피폐·세수 악화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지자체는 수두룩하다. 중앙정부의 교부·보조금 없이는 자체 조달재정이 50%대를 밑든다(2021년 재정자립도).

30% 미만도 173개에 달한다. 자체수입으로 인건비도 못 건지는 곳도 63곳이다. 예산낭비 신고건수는 2,000건을 넘긴다. 위기돌파를 위한 혁신적인 지역경영이 아니면 파산도시 출현은 시간문제다. 파산선언은 지역소멸을 앞당긴다.

중앙정부의 신탁통치를 받아도 원죄적 고통분담은 동반된다. 파산하고 후회한들 예전대로 되돌릴 수도 없다. 교토·유바리의 타산지석은 파산선언을 회피할 선제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산선언=지역소멸=유령마을’은 이음동의어다. 인구변화의 속내와 본질을 읽어야 막아낼 수 있는 화두다. 감춰진 시한폭탄을 찾아내 뇌관을 없애는 게 관건이다.

파산은 수입보다 지출이 클 때 생긴다. 행정조직도 똑같다. 세입·세출의 이름만 다르지 기본구조는 같다. 회사조직은 구조조정·혁신실험으로 위기타개를 모색한다. 비빌 만한 언덕이 없기에 자기책임 하에 개혁에 나선다. 그러나 행정조직은 다르다.

공공성을 내세운 무주공산의 모럴해저드·무책임성이 암약한다. 빚으로 표를 맞바꾸는 후진·관성적 공공사업을 반복한다. 줄여도 부족할 판에 교토·유바리처럼 공격적인 토건사업마저 익숙하다. 불편한 절약보다 익숙한 채무로 피해가려는 계산이다.

주인 없는 조직답게 뒷날을 생각하지 않는 무모한 자충수가 화려한 승부수로 포장돼 포퓰리즘을 완성한다. 우리라고 자유로울 리 없다. 인구변화의 속도·규모를 보건대 일본걱정은 오지랖에 가깝다. 229개 기초지자체 중 재정염려가 없는 곳은 극소수다. 그럼에도 문제인식은커녕 실패전철에 익숙하다. 더는 아니다. 인구변화의 엄중경고에 발맞춘 고달프나 유의미한 선제대응만이 살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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