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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직무유기

입력
2021.11.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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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직무유기를 국어사전은 ‘맡은 일이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형법(122조)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많은 인사들이 직무유기의 죗값을 치렀다. 관행을 처벌하는 게 맞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국민 눈에 더는 맞지 않는 관행도 많았기에 어느 정도는 지지도 받았다. 다만 법이 공평하려면, 문 정부 스스로 할 일을 거부, 유기한 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5년간 연금개혁을 유야무야한 것은 문 정부의 대표적인 직무유기 사례다.

지금의 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최근까지 나왔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 개혁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국민이 추가로 내야 할 부담액이 5년간 15조~21조 원가량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문 정부는 2018년 12월 국회에 ‘4지선다형 개혁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그뿐, 문 정부의 공무원이나 180석의 거여 세력은 이를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시한폭탄은 이 순간에도 돌아간다. 아직 정부의 공식 전망인 ‘국민연금 2057년 고갈’은 정말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합계출산율 0.8명대의 현실은 ‘2040년대 고갈’도 허풍이 아닐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세대 간 부조’라는 연금의 기본 고리가,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끊어질 위기다.

국민연금뿐이 아니다.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과 건강, 고용, 산재, 장기요양보험 등 통칭 ‘사회보험’은 이미 국민연금보다 더 위태롭다. 2017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장기요양보험에 이어, 2018년 이미 적자를 경험한 건강보험은 올해부터 다시 적자로 접어들 게 유력하다. 모든 사회보험의 기본 전제는 ‘본인부담, 본인수급’이지만 당장 제도가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매년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4대 연금과 4대 보험에 투입된 19조 원의 세금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게 뻔하다.

개혁은 고통스럽다. 약속받은 돈이 줄고, 내야 할 돈이 많아진다는데 누구 하나 반길 리 만무하다. 특히 정치세력에겐 생명을 건 모험이다.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연금개혁을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을 성공시키고 권력을 잃었다. 이후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리더로 변모시킨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패자에겐 씁쓸한 위로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유력 대선주자들은 좀처럼 연금개혁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5년 주기의 국민연금 재정재계산은 차기 정부 초반인 2023년 다시 돌아온다. 허송세월한 5년의 대가는 훨씬 냉혹하게 청구될 것이다. 그나마 힘 있는 집권 초기 큰 상처를 감수하고 밀어붙여도 될까 말까일 텐데, 이재명, 윤석열 후보 모두 이렇다 할 공약조차 없이 두루뭉술한 공자님 말씀만 되뇌고 있다.

연금, 보험은 국방만큼 중요한 사회의 기초 인프라다. 그 인프라가 위태로우니, 대통령이 “세계 톱10의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할 만큼 현실을 자조하는 것 아닐까. 연금개혁은 여야 모두 대선에서 잡으려 혈안인 ‘이남자’, ‘이여자’의 인생 고민이기도 하다. 더는 외면할 시간이 없다. 문 정부의 직무유기, 또 반복할 건가.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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